한국일보

‘붉다’는 의미… 이슬람 문화 간직한 궁전으로 남아

2011-12-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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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함브라 ②

▶ ■ 잔 김의 길 따라 배우는 스패니시 [34]

1100년께 모로족의 알 안달루스 왕국에 새 국왕이 즉위했는데 나이가 고작 12세였다. 그래서 당분간 그의 스승인 Al Mansur(알 만수르)에게 나라를 다스리게 했는데 알 만수르는 이베리아 반도에 있는 타종교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기독교인과 유대교인에게 이슬람교인보다 세금을 훨씬 많이 부과시켰다. 그래서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서 북쪽의 카스티야 지방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 후 십자군 전쟁의 막바지인 1212년에 이베리아 반도에 기독교 재건의 깃발이 올랐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지에서 모여든 십자군은 Las Navas de la Torlosa에서 이슬람 왕인 알모하드의 군대를 맞아 격전 끝에 승리를 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이베리아 반도의 Castilla(카스티야), Aragon(아라곤), Portugal(포르투갈) 왕국들은 십자군의 승리를 계기로 힘을 얻어 기독교의 reconquista(국토 회복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카스티야 왕국은 Rodrigo Diaz de Vivar라는 젊은 지휘관이 군대를 이끌었는데 위기에 처한 왕국을 구하는데 크게 활약을 해서 영웅이 되었다. 그를 모두들 엘시드(El CID)라고 불렀다. 엘 시드란 ‘대장’ ‘두목’이란 뜻으로, 엘시드는 그 후에도 기독교 군대를 이끌고 이슬람의 대군을 맞이하여 수차례에 걸쳐서 대승을 거둠으로 알 안달루스 왕국을 이베리아 남쪽에 있는 이슬람교도의 최후 근거지인 그라나다로 쫓아낼 수가 있었다.


모로족의 퇴각과 함께 이베리아 전 지역은 카스티야 지방을 중심으로 이사벨 여왕과 아라곤 지방의 페르난도 왕의 양대 산맥이 차지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아라곤 언어가 에스파뇰이 되고 카스티야 언어는 카스테쟈노가 되었다. 또한 갈리시아 지방 언어는 포르투갈 언어가 되었다.

1474년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라 여왕이 즉위하고 1479년에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2세가 왕위를 계승했는데 나중에 이 두 왕이 결혼을 함으로써 하나의 통합국가인 스페인이 탄생되었다. 스페인 왕국은 이베리아 남쪽에 있는 이슬람교도의 최후 근거지인 그라나다를 완전히 점령함으로써 여러 세기에 걸친 이슬람의 지배에서 영토를 회복하게 되었다. 이 그라나다는 이슬람교적 양식의 대표적 건축물인 알함브라의 궁전의 소재지였다.

저녁노을이 질 때쯤에 성이 붉게 물든다고 하여 무어인들의 언어로 ‘붉다’라는 뜻을 가진 알함브라라는 이름의 궁전은 이베리아 반도에 존재했던 마지막 이슬람 왕조인 나스르 왕조의 무하마드 1세 알 갈리브가 13세기 중반에 세우기 시작했으며, 증축과 개보수를 거쳐 완성된 것으로서, 현재 남아 있는 궁전의 모습은 대부분 14세기에 완성된 것이다.

특유의 인공미는 물론 자연과의 조화 또한 일품으로, 그 아름다움 때문에 이슬람 문화의 결정체로 일컬어지는 알함브라 궁전은 그 아름다움만큼이나 비극적인 운명을 지니고 있다. 1492년 컬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그 해, 스페인의 페르난드 2세의 공격을 막지 못한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왕 보아브딜은 이 궁전을 평화적으로 내어주고는 아프리카로 떠나갔다. 그래서 알함브라 궁전은 이전 800여년 간 내려온 이슬람 문화의 찬연함을 홀로 간직한 채 이베리아 반도에 남게 된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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