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로넨 LA필 계관지휘자, 힐보그 작품 세계 초연 박수갈채
LA 필하모닉의 계관지휘자 에사 페카 살로넨. 그는 떠난 뒤에도 매년 LA필을 찾아 특별한 연주를 선사하고 있으며 관객들은 그가 올 때마다 열렬한 기립박수로 환영을 표한다.
스타벅스 커피가 40년 넘게 사용하고 있는 로고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이렌(siren)의 상반신 모습이다. 사이렌은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람들을 미혹시켜 배를 난파시키는 인어요정으로, 이들의 노랫소리를 듣는 사람은 헤어 나오지 못하고 그 소리에 이끌려가다가 암초와 부딪쳐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 지금도 우리는 앰뷸런스 경고음을 사이렌이라고 하는데 바로 이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리스 영웅 오디세우스(율리시즈)는 트로이전쟁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갈 때 사이렌들을 만나게 되자 재앙을 피하기 위해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틀어막게 한다. 하지만 그 노랫소리가 너무도 궁금했던 오디세우스는 자신을 돛대 기둥에 꽁꽁 묶도록 하고 어떤 말을 해도 밧줄을 풀어서는 안 된다고 명령한 후 사이렌 섬을 지나가는데 그들의 노래가 얼마나 혼을 다 빼놓는지 그리로 가겠다고 발버둥치는 모습이 호머의 ‘오딧세이’에 기록돼 있다.
그 사이렌의 노랫소리가 항상 궁금했었다. 얼마나 참을 수 없이 아름답고 매혹적이면 뱃사람들이 혼을 다 빼놓고 목숨을 헌납하며 소리를 따라갔을까? 얼마나 죽을 만큼 간절하고 절박하기에 암초와 절벽 따위는 눈에 보이지도 않았을까?
그 사이렌의 노래를 지난 26일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들은 것 같다. LA필 계관지휘자 에사 페카 살로넨의 지휘로 세계 초연된 앤더스 힐보그(Anders Hillborg) 작곡의 ‘사이렌’(Sirens)은 올해 라이브로 들은 최고의 음악이었다.
LA필과 LA 매스터코랄, 그리고 두 명의 솔로이스트(소프라노 힐라 플리트만과 메조 소프라노 앤 소피 본 오터)가 어찌나 유혹적인 소리로 ‘이리로 오라’고 불러대는지 당장에라도 이승을 떠나 황홀한 음악의 세계로 빠져들고픈 열망이 솟아오르는 연주였다. 율리시즈의 영령이 살아나 함께 연주를 감상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만큼, 영혼을 부르고 사무치는 소리가 35분간 디즈니 콘서트홀에 울려 퍼졌다.
좋은 음악을 들을 때면 작곡가에게 무한한 감사와 경의를 표하게 되는데 이 날 초연에 참석한 힐보그를 향해 청중은 기나긴 박수세례를 퍼부었다. 그는 사람들과 악기들에서 평소 기대하지 않았던 특별한 음들을 끄집어내 전율이 이는 소리를 만들어냈다.
합창단의 비밀스런 속삭임, 실처럼 가늘고 높은 고음으로 머리칼이 온통 곤두서게 만든 소프라노, 심지어 물 채운 와인 잔이 타악기가 되어 만들어낸 신비한 공명들은 밤바다 같은 조명과 일체를 이루며 이 날의 공연을 세상에서 한 번뿐인 특별한 경험으로 승화시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