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주민들에 의해 가주 태생 피오 피코 주지사 탄생

2011-11-1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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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잔 김의 길 따라 배우는 스패니시 [33]

▶ 알바라도 스트릿 <4·끝>

마침내 미첼토레나(Micheltorena) 부대가 몬트레이(Monterey)에 도착했지만, 대부분 죄수들로 구성된 그 부대는 통제불능 상태였고, 반란 조짐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 부대원들의 약탈이 심해지자 대 목장주이자 현직 주지사였던 알바라도(Alvarado)는 1844년 11월14일 다른 캘리포니아 목장주들과 함께 미첼토레나 신임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규 규탄하기 시작했고, 마누엘 카스트로 등과 함께 군대를 조직하여 멕시코 정부군에 대항하기에 이르렀다. 1845년 2월20일 LA 인근의 코행가 계곡(Cahuenga Pass)에서 정부군과 반란군 간의 첫 전투가 치러졌다.

400여명으로 구성된 양쪽 군대는 이틀에 걸쳐서 전투를 했는데 양군의 사상자는 전무하였다고 한다. 외국인과 인디언 그리고 통제불능의 재소자로 구성된 미첼토레나 군대는 처음부터 싸울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었다. 피해 상황은 말 1필이 사망하고 당나귀 1마리가 부상당한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정부군은 이내 항복하고 통제불능의 미첼토레나 군대는 캘리포니아 밖으로 추방되는 것으로 전쟁은 종결지어졌다. 평화를 찾은 캘리포니아는 캘리포니아인들의 손으로, 캘리포니아 태생의, 제14대 주지사를 뽑았는데 목장주 중의 한 사람인 피오 피코(Pio Pico)가 선출되었다.

그 후 1846년 5월에 시작된 미국과 멕시코 전쟁은 텍사스뿐만 아니라 인근의 뉴멕시코와 애리조나까지 확산되더니 이윽고 캘리포니아에까지 이어졌는데, 7월7일 미 해군 존 슬럿(John D. Sloat) 함장이 몬트레이를 정복하고 캘리포니아의 독립을 발표했다.

이에 알바라도는 피오 피코 주지사와 마누엘 카스트로 등과 함께 미국에 대항해 전쟁을 벌였지만 결국 8월 항복하고 말았다. 그리고 1847년 미국과 멕시코가 과델룹 히달고 조약을 체결할 무렵인 그해 1월 캘리포니안들도 공식적으로 미국에 항복했다. 구금됐다가 풀려난 알바라도는 그의 아내 마르티니의 집안이 있는 샌파블로 목장(Rancho San Pablo)에서 은퇴생활을 하였다.

그는 1860년에 그의 소유지에 유니온이란 이름의 호텔을 개업했으나 그의 사업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고, 1876년 아내가 사망하자 캘리포니아의 역사를 자서전 형식으로 집필하기 시작했다. 이후 1882년 그는 그의 목장에서 일생을 마쳤으며 오클랜드에 있는 샌타마리아 성당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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