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비 오는 아프리카(1)

2011-11-1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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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교하는 삶

지난 주 아프리카 단기선교를 다녀왔다. LA 공항을 떠난 지 20여시간 만에 비행기는 나이로비에 도착했다. 국제구호개발 NGO인 ‘굿 네이버스’의 박용원 목사님을 따라 첫 일정을 시작한 곳은 외곽지역인 빈민촌 단도라의 직업교육센터. 정면에는 학교건물을 도네이션했다는 한국 기업체의 기념 명패가 붙어 있다.

여기서 주민들을 치료하기 위해 가지고 간 장비를 펼쳤다. 마침 이곳에 봉사를 나와 있는 한국 대학생 두 명을 만났다. 1년 전 파견된 이 젊은이들은 해외자원봉사단의 일원으로 주민들을 위해 일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내 옆에서 임시 간호보조를 해주었다.

직업학교 주변으로 어설프게 둘러쳐진 담장 바로 옆은 끝없는 쓰레기 산이다. 바로 곁에서 풍기는 쓰레기 썩는 냄새로 숨을 제대로 쉬기도 어렵다. 그곳이 삶의 터전인 주민들은 쓰레기더미 안에서 그나마 쓸만한 물건을 뒤져서 서로 사고팔며 살아간다. 진료를 하는 사이에도 쓰레기 산에서 날아든 파리떼가 땟국으로 얼룩진 환자의 옷이랑 내 손에 새까맣게 몰려든다.


이튿날은 단기선교팀의 목적지인 에티오피아 국경지대, 모얄레로 가는 경비행기를 탔다. 4시간 거리의 멀고 먼 외딴 지역이다. 역시 선교사인 영국인 조종사가 출발에 앞서 기도를 한다. 날씨가 궂은 탓에 프로펠러가 하나뿐인 경비행기는 처음부터 곡예비행이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갑자기 비행기가 아래로 수직강하! 순식간에 추락하는 느낌으로 온몸이 얼어붙는다.

에어포켓에 걸렸다고 조종사가 설명한다. 2년 전에는 나보다 하루 앞서 이 지역을 지나던 다른 선교팀원이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일도 있었다.

얼마 후 우리는 감사하게도 에어포켓을 빠져나와 무사히 모얄레에 도착했다. 아! 푸르다! 지난 10년 동안 이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보이는 것은 메마른 땅과 풀썩거리는 먼지 뿐이었는데 이번에는 눈길 닿는 곳에 잎이 푸르고 말랐던 땅은 단비로 촉촉하다. 우기라도 이런 비는 처음이다. 은혜다!

지난 몇 달 동안 현지 이원철 선교사님은 비를 달라는 중보기도 편지를 보내왔었다. “그동안 부족 간의 갈등이 심해서 죽고 죽이고 약탈하고 상대편 여자를 겁탈하는 것으로 복수의 고리가 끝없이 이어지곤 했습니다.” 이 선교사는 두 부족을 한 자리에 불러 같이 기도하며 서로 쌓인 미움을 풀자고 호소했고 양쪽 대표가 화해를 이루는 기적이 일어났다.

오랜 가뭄으로 풀은 메말랐고 먹을 것이 없어 뼈만 앙상한 채 죽어가는 가축들이 부지기수였다. 부족화합의 놀라운 역사와 함께 하늘에서는 단비가 며칠을 두고 쏟아져 내렸다.

모얄레에 세워진 크리스천 고교 기숙학생들을 2년만에 다시 만났다. 지난해 첫 졸업생들이 학교를 떠났고 재학생들은 나를 기억하고 반겼으며 신입생은 그들 평생 치과의사를 처음 만나본다고 했다. 그 사이 윌리엄과 자슈아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으며 내년에는 나이로비 신학대학에 입학한다.

이번에 함께 간 선교팀은 예비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학교 채플 시간에 드린 예배에서 찬송가 ‘죄짐 맡은 우리 구주~’를 스와힐리어로 부를 때 윌리엄과 자슈아의 큰 눈에서는 하염없이 은혜의 눈물이 흘렀다.

주민들 대다수가 무슬림인 이 지역에 처음으로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지 만 5년. 하나님은 씨앗을 심게 하시고 물을 주게 하셨으며 여린 새잎이 트는 것을 목격하는 감격까지 맛보게 하셨다.


김 범 수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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