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통령 여덟분 밑에서 FBI국장 지냈지”

2011-11-11 (금)
크게 작게
“대통령 여덟분 밑에서 FBI국장 지냈지”

휘버(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의회 청문회에서 증언하고 있다.

J. 에드가 후버의 삶 다룬 전기영화

20대에 시작해 77세로 은퇴할 때까지 8명의 대통령 밑에서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지내면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 J. 에드가 후버의 삶을 다룬 고전풍의 전기영화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하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했다. 이스트우드는 영화음악을 작곡도 했는데 자신의 다른 영화에서처럼 간결한 피아노 음악을 쓰고 있다.

모든 이스트우드의 영화가 그렇듯이 이 영화도 그의 성격이나 외모처럼 차분하고 튼튼하며 군더더기가 없는데 문제는 너무 차분한 것이 탈. 감정적으로나 극적으로 영화가 도무지 움직이지를 않아 흥미 있는 소재가 강력히 어필해 오질 못한다. 화면조차 색깔이 탈색되고 어둡다.


영화는 후버의 온갖 흉악범들과의 범죄퇴치 전쟁에 초점을 두었다기보다 그의 동성애 기호와 평생 후버를 지배하고 조정했던 그의 어머니와의 관계 등 후버의 개인적 삶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재미있는 영화라기보다 실팍한 전기서적을 읽는 것 같은 작품으로 특히 후반에 들어 후버와 그의 오른 팔이었던 클라이드 톨슨과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다뤄 일종의 비극적 러브스토리라고도 하겠다.

영화는 나이 먹은 후버가 구술하는 자기 삶을 부하들이 타이프를 해 책으로 만들어내는 식으로 진행되면서 과거와 현재가 교차된다. 매사를 어머니 애니(주디 덴치)와 상의하고 또 어머니의 말을 잘 듣는 ‘마마스 보이’ 후버는 20대에 FBI에 들어가 일약 승진을 하면서 새파란 나이에 책임자가 된다.

권력욕에 눈이 먼 후버는 오합지졸들과 같았던 요원들을 정리하고 엄격한 내규를 마련하면서 기구 재정비에 들어간다. 이 때 새로 들어온 클라이드(아미 해머-‘소셜 네트웍’)와 후버는 첫 눈에 서로에게 이끌리면서 둘은 평생 동지이자 반려자로 지내게 된다.

후버는 분명한 동성애자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클라이드의 동성애 경향만 강조하고 후버의 성향은 애매모호하게 묘사했다. 영화에선 또 후버가 여자 드레스를 입는 장면도 묘사, 풍문으로 나돌던 그의 변태성을 보여준다.

후버는 이어 새 비서 헬렌 갠디(네이오미 와츠)를 고용하는데 후버는 처음에 헬렌에게 구혼을 했다가(자기의 동성애 경향을 숨기기 위한 전략에 분명하다) 거절을 당한 뒤로 둘은 충실한 상사와 부하 관계로 근 반세기를 함께 보낸다.
권모술수에 능한 인종차별 주의자로 철저한 반공산주의자이기도 한 후버는 정치가들과 언론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면서 부하들이 세운 공을 자기가 독식, 워싱턴의 막강한 세력자로 부상한다. 그는 존 딜린저 사건을 해결하고 찰스 린드버그(조시 루카스)의 아들 유괴 살해사건을 푸는 등 많은 업적을 세우면서 오늘의 FBI의 기틀을 마련한 공도 크지만 마틴 루터 킹을 비롯해 역대 대통령들과 그들의 부인들의 비리와 비밀들을 수집, 이를 무기로 자기 권력을 지켜나간다.

디카프리오가 후버를 거의 연민의 정으로 매우 인간적으로 묘사한 연기를 뛰어나게 한다. 해머의 연기도 훌륭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늙은 모양을 만든 분장술은 흉측하다.
R. WB. 전지역.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