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싱거운 세상

2011-11-04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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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필로 그린 삶

“이 신장으로는 일년도 못 삽니다” 신장 내과의인 주치의의 선고였다. 내 귀를 의심했다. 자리보전하고 몸져누운 사람에게나 하는 것이 ‘시한부 선고’인 줄 알았다. 이날 이때껏 눈썹이 휘날리도록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바쁘게 일하고 다니던 사람에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그럼 죽나요?” 우문이었다. “신장 기능이 정지되면…” 말해도 알지 않느냐는 닥터의 리액션이다. “이식절차를 빨리 서둘러야 합니다” 그러더니 간호사에게 UCLA 신장센터에 바로 등록을 하란다.

워낙 중증의 환자를 많이 접하는 의사인지라, 나만 청천벽력이지 의사선생님에겐 자동차 부품 갈아 끼우는 정도의 일인 듯 무심하게 말씀하신다. 무슨 사형선고가 심각하지도 않고 이다지도 심심하단 말인가? 내겐 생사가 달린 일인데 야속했다.


이리하여 나는 시한부 인생의 주인공이 되었다. 영화 찍는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한 주연도 아닌데 몇날 며칠을 울고 짜는 역을 감당하였다. 가짜 눈물도 아닌 안약도 아닌 여러 가지 상념이 뒤섞인 진짜 눈물이다.

선천적인 유전을 진즉에 알았더라면 조심조심했을 터인데 약한 신장인 줄도 모르고 무분별한 식생활을 했던 것에 대한 후회, 지나치게 열심을 내었던 회사 일과 사회활동에 대한 자책, 병치레로 가족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한 데 대한 미안함 등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필이면 왜 내게 하다가도, 그나마 암이 아닌 것이 다행이지 하기도 하면서 갈팡질팡이었다. 마음으로 천국과 지옥을 수차례 오르내린 끝에 이젠 조금 진정이 되어간다.

매일 어김없이 찾아오던 아침을 맞는 소회가 이전 같지 않다. 간밤에 데려가지 않으시고 새날을 맞게 하심이 감사하다고 기도한다던 이들에게 속으로 “참 유난 떤다”고 조롱하던 것이 내 일이 되었으니 세상사 새옹지마에 역지사지이다. 어제 목숨을 잃은 사람에게는 다시 오지 않을 또 하루의 생명, 또 하나의 새로운 우주가 열리는 시간인 것이다.

앞으로의 일은 나도 모른다. 생명은 오직 절대자의 손에 달렸으므로 그의 손에 맡긴다. 걱정거리를 절대자에게 패스하고 나니 오히려 참 편하다. 모든 결정이 단순하게 되었다. 글도 일도 하고 싶은 것만 하기로 하였다.

이제 음식은 신장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간을 하지 않고 먹는다. 병을 소문냈더니 주변사람들은 부드러운 죽에 야채수프를 무한 공급해 준다. 외식하는 일이 있어도 주로 심심한 죽을 먹고, 집에서도 죽을 자주 쑨다.

요즘 나는 싱거운 세상에서 죽 쑤고 있다. 오랜만에 가져보는 심심하고 단순한 세상. 몸도 마음도 휴가 중이다.


이정아
<재미수필문학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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