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두 얼굴의 인물 연기하고 싶었죠”

2011-10-2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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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인터뷰| ‘드라이브’ 운전사 역 라이언 가슬링

“두 얼굴의 인물 연기하고 싶었죠”

무명씨가 범행도주 차량에서 대기하고 있다.

현재 상영중인 LA 느와르 ‘드라이브’(Drive)에서 낮에는 영화 스턴트카 운전사요 밤에는 범행차 운전사로 일하는 무명씨 역을 맡은 라이언 가슬링(30)과의 인터뷰가 지난 9월26일 베벌리힐스의 몬타지 호텔서 있었다. 샛노란 머리에 늘씬한 키 그리고 매서운 파란 눈을 한 미남 가슬링은 질문에 심사숙고를 한 뒤 조용한 목소리로 답했는데 상당히 수줍어하는 편. 그는 가끔 우스갯소리를 할 때도 얼굴은 무표정이었는데 인터뷰가 어색하다는 듯이 외면을 하거나 자주 얼굴에 홍조를 띠었다. 그리고 거북하거나 확신이 없는 질문에는 아예 답을 회피했다. 캐나다 태생으로 음악에도 재능이 있는 가슬링은 뛰어난 연기파로 이미 ‘해프 넬슨’으로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오른 경력이 있는 앞으로 대성할 배우다. 영화의 원전은 제임스 샐리스의 동명소설.

*당신은 이 영화에서처럼 언제나 두 얼굴의 인물을 연기하고파 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언제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괴물이다. 이유는 모르겠다. 어쩌면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역을 못 맡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야 다소 원을 푼 셈이다.

*이 영화의 전반부는 무드 짙은 프랑스 갱영화를 연상케 한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감독과 프랑스 갱영화에 대해 논의한 바 있는가.
-없다. 우리는 지난 80년대 유행한 존 휴즈 감독의 청춘물들인 ‘프리티 인 핑크’와 ‘16개의 촛불’ 등 솜사탕 같은 영화에 피를 조금 뿌려 보자고 생각했다. 나는 이 영화가 차를 빨리 몰거나 스턴트에 관한 것이 아니라 차 그 자체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고 느꼈다. 실존주의적 경험의 영화로 차가 당신에게 미칠 수 있는 마법을 얘기하려고 했다. 차를 운전자의 잠재의식을 파고드는 도구로 쓰고자 했다.


*영화를 만들게 된 동기는.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브론슨’ 감독)과 함께 차를 타고 가는데 라디오에서 리오 스피드왜건의 ‘아이 캔트 화이트 디스 필링 에니모어’가 나왔다. 그러자 니콜라스는 목청이 터져라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러더니 그는 제대로 감정을 느낄 줄을 몰라 음악을 들으며 LA를 차를 몰고 다니는 남자에 관한 영화를 만들자고 말했다. 그때 그 음악이 안 나왔더라면 이 영화는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은 올해 ‘크레이지, 스튜피드, 러브’와 ‘드라이브’ 및 ‘아이즈 오브 마치’(‘3월15일’) 등 세편의 영화에 나왔는데 매 역에 자기를 어떻게 연결시키는가.
-그 건 사적인 일로 비밀이다. 나대로 역에 나를 동일화하기 위해 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지만 그 내용은 비밀이다.

*어떤 차를 모는가.
-나는 운전을 좋아한다. 영화를 만든 이유 중 하나는 나도 주인공처럼 많은 시간을 혼자 차를 몰고 다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모는 차는 영화에 사용된 1973년도형 셰비 말리부다. 이 차는 내가 영화를 위해 폐차장에서 200달러를 주고 사 한 달 반 동안 정비해 복구했다. 그래서 차에 정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과속 딱지를 받은 적은 없다.

*당신은 영화 ‘노트북’에서 보기 드물게 로맨틱한 남자로 나왔는데 실제로 로맨틱한 사람인가.
-모르겠다. 난 그 때까지 한 번도 로맨틱한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았었다. 그 영화에 나오게 된 동기는 감독 닉 캐사베티즈가 나를 다른 멋쟁이 배우들과 달리 매우 평범한 사람으로 봤기 때문이다. 하여튼 그 역은 내게는 정도를 벗어난 경험이었다.

*당신이 스스로 이 영화의 감독을 선정했는데 그 이유는.
-그 것은 우리 둘이 모두 영화를 맹목적인 숭배의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난 어렸을 때 ‘램보’를 보고 학교에 칼을 들고 갔다가 들켜 혼이 난 적이 있다. 그 뒤로 나는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성경 영화나 내셔널 지오그래픽 영화 밖에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몰래 영화를 빌려다 보면서 영화가 나의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니콜라스와 나는 서로 아주 다른데도 영화에 관한한 영감이 교통하고 또 꿈과 생각도 같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영화를 만드는 것은 우리의 꿈의 유사점을 발견해 그 것을 스크린 위에 옮기기 위해서다.

*영화를 만든 절차에 관해서 말해 달라.
-먼저 가능한 대로 대사를 쳐냈다. 다음으로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은 찍지를 않았다. 이 영화는 관객을 위해 만든 영화라기보다 감독이 자기를 위해 만든 영화다. 그는 자기와 당신들의 내면에 잠복해 있는 것을 탐구하기 위해 가슴 속 깊이 파고들었다. 그 것이 내가 그와 함께 일한 또 다른 이유다.

*올해는 라이언 가슬링의 해라고 해도 좋겠는데 소감은.
-솔직히 말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어서 느낌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새로울 뿐이다. 현재의 내 삶이 과거와 다르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 것에 대해 어떻게 느끼게 될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다.


*당신은 조지 클루니가 주연하는 정치 영화 ‘아이즈 오브 마치’(The Ides of March)에 나왔는데 당신의 정치관은 무엇인가.
-나는 과거 한 소식통에서만 얻은 정치 정보를 믿었는데 여러 소식통의 것을 취합해 그 것들을 서로 비교해 어느 것이 과연 진실인가를 결정해야 옳다. 이제 어느 정도 연예계에 종사해 나는 내 앞에 주어진 정보가 과연 진실이냐 또는 거짓이냐 하는 것을 알게 됐다. 내 직업은 솔직하기가 힘든 직업으로 진실하고 싶어도 정말로 그러기가 힘들다. 내가 말한 것들이 갈갈이 찢겨 와전되거나 또 전체적인 것을 전달하는 대신 부분만을 골라 쓰기 때문에 오해를 받는다. 진실이 왜곡되는 것인데 나는 이제 정치에 관한 것을 읽을 때 내 경험을 거기에 적용시킨다.

*사람을 가차 없이 처분하고 가느다란 미소를 짓는 것이 스티브 매퀸을 닮았는데.
-고맙지만 스티브 매퀸을 따를 사람은 없다. 내가 맡은 무명씨는 영화를 너무 많이 봐 그 것들의 주인공들을 마구 혼합해 자신의 영웅으로 만든 할리웃 신화 속에서 길을 잃은 자다. 이 역은 어떻게 보면 그동안 내가 맡고 싶었던 나의 수퍼히로 역이다. 그런데 그는 사이코이자 망상가이다.

*당신의 다음 영화는 은행 강도를 하는 모터사이클 스턴트맨인데 모터사이클과는 어떤 관계인가.
-나는 자동차보다 모터사이클을 더 좋아한다. 내 머리가 뭔가 잘못됐는지 몰라도 내가 어렸을 어떤 한 남자가 모터사이클에 치어 쓰러져 피를 흘리는 것을 보고 모터사이클을 가져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 모터사이클을 타고 신문배달을 했는데 얼마 가지 못했다. 그래서 모터사이클 영화를 만들게 된 것은 내게 매우 큰일이다.

*직접 차를 고칠 줄 아는가.
-지금 타고 다니는 차 외에는 모른다.

*당신의 삶의 추진력은 무엇인가.
-영화를 만드는 것은 내게 하나의 충동이다. 나도 이해를 못하겠는데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몰린다. 내가 영화를 만드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이 같은 강박관념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강박관념이 더 심해진다. 그 이유를 밝혀내고자 애쓰고 있다.

*처음부터 라틴어가 들어간 제목의 뜻을 알았는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사전 등을 찾아보는 타입인가.
-제목의 뜻을 알고 있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열심히 찾아본다.

*당신은 자신의 밴드가 있고 또 곧 음반도 출반하는데.
-처음부터 밴드를 구성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친구와 함께 초등학생들을 위한 연극용 음악을 작곡한 어떻게 음반으로 나오게 됐다. 곧 나올 음반 이름은 ‘더 싱즈 인 더 나잇’이다.

*어떤 음악을 듣는가.
-나는 자니 주월의 열렬 팬이다. 좋아하는 장르는 다크 디스코다.

*당신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예산 독립영화에 주로 나왔으나 이제 점점 돈 많이 쓴 영화에 나오고 있는데 차이가 무엇인가.
-제작비가 높은 영화에 나오는 것은 저예산 영화에 나오는 것보다 자유가 제한된다는 얘기다. 투자한 만큼 회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꿈은 ‘드라이브’처럼 저예산 영화를 만들어 관객이 보도록 배급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영화를 만드는데 큰돈이 들 필요는 없다. 내가 과거 저예산 영화에 나온 것은 자유 때문이다. 이제 대작에 나와도 어느 정도 자유를 누릴 수가 있어 그 기회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영화에서 감정을 극도로 통제하고 있는데 그 것을 어떻게 해냈는가.
-니콜라스는 배우가 얼굴 표정을 짓거나 왔다 갔다 하면서 연기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 그저 편안하게 거의 체념하는 식으로 본연의 스스로로 카메라 앞에 서기를 원한다. 자신을 믿으면 된다는 것이다. 연기로부터 자유로워지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는 음악을 들으면서 운 다음 카메라가 돌기 전에 내게 다가와 날 한참 끌어안은 뒤 “하느님과 함께 가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대로 했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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