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후추 찾아 나선 컬럼버스, 궁여지책으로 내놓아

2011-10-21 (금)
크게 작게

▶ 길 따라 말 따라<29> 고추

1096년, 유럽인들에 의해서 시작된 십자군 전쟁의 결과로 유럽은 동방과의 교류가 끊어지며 고립되는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수많은 동방의 상품들의 교역이 중단되어 이집트의 종이를 비롯하여 향료, 비단 등의 동방 산물의 수입로가 막혀 버렸던 것이다. 특히, 인도에서 들여오던 후추는 양고기나 돼지고기의 잡냄새를 제거해 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미사에도 유용하게 사용되었던 향료였기 때문에 후추가격의 폭등은 유럽 세계를 마비시킬 정도였다.

이에 유럽의 여러 왕국은 인도로 가는 육로가 아닌 새로운 해상로를 찾아야만 했다. 가장 먼저 해상로를 찾은 국가는 포르투갈이었는데 그들은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남하한 뒤에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돌아 아라비아 반도 해안을 통과하여 인도로 가는 해상로를 개척했다.


에스파냐의 후원을 얻은 컬럼버스가 이 후추를 얻기 위해서 서쪽으로 향했는데 그가 도착한 곳은 인도가 아닌 전혀 새로운 대륙이었다. 그러나 컬럼버스는 이 대륙이 인도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만일 인도가 아니라면 컬럼버스의 인도 항로 개척은 실패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인도에 갔다 왔다는 증거로 아메리카 원주민을 인도 사람이라는 뜻인 인디오(인디언이라는 스패니시)를 스페인으로 데리고 가서 소개했다. 그리고 그가 만일 인도에 갔다 왔다면 원래의 목적이었던 후추를 내놓아야 했는데 그는 후추를 내놓지 못했다. 그래서 컬럼버스가 ‘피미엔토 로호’(pimiento rojo; ‘붉은 후추’라는 스패니시, 영어로는 red pepper)라며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상품이 바로 고추였다.

고추는 아메리카가 원산지로 전 아메리카에 고루 퍼져서 재배되던 식물로 적어도 기원 전 7,500년부터 아메리카 대륙에서 매운 향료식품으로 식용되었다고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고추는 아메리카 대륙에서만 부르는 이름도 다양한데 오늘날에는 멕시코의 할라페뇨(jalapeño)를 비롯하여 볼리비아의 울루피카(ulupica) 와아히(aji) 등이 남아 있다. 지금도 스패니시로 고추를 ‘아히’라고 부른다.

이 ‘붉은 후추’란 뜻의 고추는 후추처럼 열대지방에서만 재배된다는 제약이 없기에 온 세계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 후 1542년 포르투갈은 스페인에서 얻은 고추를 인도로 가지고 가서 재배하였는데 당시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인도의 고안 지방을 비롯하여 터키와 헝가리로 전파되면서 파프리카와 매운 향료로 발전되었는데, 2007년, 세계에서 가장 매운 고추로 인도 고추인부트 졸로키아(bhut jolokia)가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