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는가.
종교적, 윤리적, 철학적으로 매우 오래된 질문이다. 특히 일반적인 자살과 달리,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극히 어려운 상황에 놓인 환자들의 경우 편하게 죽을 수 있는 ‘안락사’의 권리를 인정할 것이냐의 문제는 많은 나라에서 아직도 논쟁이 진행 중이다.
종교의 영향이 강한 나라로 꼽히는 인도에서 안락사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가 나와 눈길을 끈다.
영화 ‘청원’은 안락사를 법으로 금지한 국가를 상대로 안락사의 권리를 법적으로 청원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인도영화답게 감정의 진폭이 크다 못해 신파로 흐르기도 하지만, 묵직한 주제를 사랑 이야기와 버무려 대중적으로 풀어낸 솜씨가 돋보이는 영화다.
영화는 마냥 희망과 긍정을 얘기하는 달콤한 노래와 함께 시작한다. ‘인생은 아름답다’는 노랫말과 함께 초원 위에 그림같은 저택이 등장하고 이 저택의 거실에는 빨간 립스틱을 바른 ‘여신급’ 미모의 여인이 등장해 커튼을 열어젖힌다.
눈부신 햇살과 함께 시작되는 하루. 여인은 누워있는 한 남자를 일으켜 머리를 감겨주고 양치질을 해주고 온갖 시중을 들며 라디오 DJ 일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준다.
남자는 한때 세계 최고의 마술사였던 ‘이튼’(라틱 로샨). 마술쇼 도중 사고로 신경이 손상돼 전신이 마비되고 생명까지 위태로웠지만, 의술의 힘에 의지해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뒤에는 강연을 다니며 희망을 얘기하고 책을 내고 라디오 방송까지 진행하며 계속 큰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그의 옆에는 십여년간 대신 손과 발이 돼준 아름다운 간호사 ‘소피아’(아이쉬와라 라이)도 있다.
이렇게 초반 5분여간 등장하는 장면들만 놓고 보면, 영화는 산제이 릴라 반살리 감독의 전작 ‘블랙’(2009)처럼 장애 또는 악조건을 이겨낸 ‘인간승리’ 스토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튼이 변호사 친구를 집에 불러 "생을 끝내기로 했다, 안락사를 할 수 있도록 법원에 청원해달라"고 말하는 순간, 영화는 이튼이 일상에서 겪어야 하는 고통에 집중하기 시작해 두 시간 가까이 고통을 끝내고 인간답게 죽을 수 있는 권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거운 얘기지만, 영화는 인도영화답게 그 와중에 이튼의 지나온 삶을 한꺼풀씩 벗겨 보여주면서 탄탄한 내러티브의 힘도 보여준다.
게다가 영화의 흥미를 더하기 위해 소피아와의 러브 스토리를 버무린 구성은 전형적이고 뻔하긴 하지만, 대중ㆍ상업영화로서는 흠이라기보다는 미덕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을 성 싶다. 회상 장면에서 등장하는 화려한 마술쇼도 볼거리다.
어머니가 증인으로 등장하는 재판 장면, 이튼이 친구들과의 이별을 앞두고 여는 최후의 만찬 장면 등은 신파를 위한 충분조건임을 인지하며 보더라도 눈물을 참기 어렵다.
삶과 죽음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깊이있게 파고든 영화는 아니지만, 안락사 문제를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다.
11월 3일 개봉. 상영시간 126분.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