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을 찍느냐, 박원순을 찍느냐” - 서울시민들은 요즘 서 울시장 선거를 놓고 고민이다. 나 경원을 찍자니 꼴 보기 싫은 한 나라당을 또 지지하는 모양새가 되고 박원순을 찍자니 좌파를 지지하는 것 같아 마음이 께름 하다. 적어도 내가 보름동안 서 울에 머물며 만난 사람들의 선 거표정은 그랬다.
“박원순이요? 곤란해요. 그 사 람 광우병 쇠고기 촛불시위 세력 의 정신적 지도자인 것 몰라요? 그 사람이 당선되면 시청에 별 별 좌파세력을 다 끌고 들어올 것 아닙니까?”
“나경원이요? 안돼요, 안돼. 이 명박 정부의 꼭두각시 노릇밖에 못할 겁니다. MB정권은 서민정 치 운운하지만 말만 번지르르 하 지 서민을 위해 해놓은 것이 없 어요. 이번에 한번 혼내줘야 돼 요. 서민층이 정말 무엇을 원하 는지 보여줘야 해요”
두 후보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이유들이다. 박원순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 들고 보수적인 사람들이다. 그가 당선되면 서울시가 어디로 갈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너무 불안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점잖 은 시민운동가로 알았는데 선거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문제점들 을 보니까 겉 다르고 속 다른 것 같아 굉장히 실망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나경원을 반대하는 세력은 주 로 젊은 층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시민혁명이 일어나야 하며 이 업무를 수행할 인물로는 박 원순만한 사람이 없다”고 말한 다. 정당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 민에 의해서 정치판이 바뀌는 혁명적인 개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원순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 들은 마음속으로 박원순을 지 지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나 경원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 을 살펴보면 박원순을 반대하 는 대안으로“ 좀 약하지만 나경 원을 찍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 는 자세다.
젊은 층의 현 정부에 대한 실 망은 대단했다. 나는 친척 중 젊 은 2세들 20여명과 회식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들은 말하기 를 “한국이 눈부신 경제발전으 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는데 젊은 사람들은 대학교 나와도 취 업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이게 무슨 경제발전이냐. 재벌들은 수 출자랑 하지만 서민층은 장사가 너무 안돼 사상최악의 불경기를 맞고 있다. 살기가 너무 힘들다” 고 입을 모았다. 이들의 액센트에 서는 분노마저 느낄 수 있었다.
놀라운 것은 박원순을 반대 하는 보수적 노인들마저 한나라 당에 대해서는 인정사정없이 회 초리를 휘두르고 있는 사실이다. 58세가 되어 은퇴하면 할 일도 없는데다 국가연금도 없어 생계 를 걱정할 정도라고 했다. 직장 에 있었을 때는 몰랐는데 은퇴하 고 보니 무엇보다 한국이 빈부의 차이가 심한 나라라는 것을 실 감한다고 했다. 이들의 일상생활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국의 노인 자살률이 왜 으뜸인지 이해가 간다.
지금 한국정치의 이슈는 사회 복지제도 개선이며 변화다. 그렇 다면 ‘변화’를 구호로 내건 박원 순의 당선이 확실한 것 아닌가. 그러나 한국의 선거풍토가 그렇 지 않다. 큰 선거에서는 무소속 의 승리가 거의 불가능하다. 지 난번 유시민도 경기도지사 선거 에서 바람을 일으키며 재야세력 대표후보로 나왔으나 패했다. 인기있는 노무현도 무소속 시절에 는 계속 낙선해 결국 민주당 간 판을 업고서야 대통령에 당선 되 었다.
이번에 시민운동가인 박원순 이 당선된다면 그것은 기적에 속 한다. 반면 나경원이 당선돼도 기적이다. 왜냐하면 변화의 바람 속에서 민심이 극도로 악화되어 있는데 박근혜의 후원이 이 역 풍을 이겨내는 이변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당선돼도 한국정치판의 기적이다.
<이철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