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비리 공화국’

2011-10-01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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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일
뉴욕 기획취재 전문기자

한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와 복수의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이 지난 주말 회동, 측근비리 의혹을 방치했다가는 자칫 권력의 조기 레임덕을 자초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관련 의혹에 대해 성역 없이 대처하기로 의견을 조율했다고 한다. 영어 사전을 보면 ‘비리’(corruption)를 ‘불합리’(irrational), ‘비합리’(unreasonable)적인 것으로 부정, 부패 등 ‘위법 행위’(illegal activity)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선거에 출마해 뽑힌 대통령을 두고 그의 부모형제자식과 주변사람들의 ‘위법 행위’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를 전담하는 무슨 특수반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은 미국에서 볼 때 정말 ‘코미디’(comedy) 같은 내용이다.

더욱이 이 같은 기구가 다름 아닌 대통령 자신의 지시에 따라 만들어진다니 ‘코미디’ 중에서도 듣는 사람들이 배꼽을 잡게끔 하는 ‘펀치라인’(punch-line)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웃지 못하는 것은 이러한 발상이 한국에서는 ‘코미디’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이 비리로 한국 법정에서 처벌을 받았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비록 자신들이 법정을 피해갔으나 비리로 아들 3명이 감옥에 갔다.


뿐만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도 결국 자신과 가족들에 대한 비리 의혹이 검찰의 수사 도마에 올랐다. 잘 알다시피 그는 검찰 조사로 여러 의혹들이 부분부분 확인돼가는 도중 돌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통령이 비리 의혹에 휘말려 나라에 ‘비극’과 ‘수치’를 한꺼번에 안겨준 역사를 남긴 것이다.

‘대통령 친인척·비리 태스크포스’기사가 나온 날 “남대문에 ‘달러 뭉치’…리먼 때보다 2배 늘어”라는 제목의 또 다른 기사가 보도됐다. 기사는 한국의 한 환전상의 말을 인용 “2주 전 원·달러 환율이 1,100원대로 올라서면서 100개∼200개(1만∼2만달러)씩 뭉칫돈을 가져오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며 “20∼30개(2,000∼3,000달러)씩 바꾸는 사람들도 하루에 수십명은 된다”고 전했다. 그리고는 노상 영업을 하는 또 다른 한 환전상이 미국에서 사는 아들이 보내준 100달러짜리 100장을 가져온 노인에게 원화로 1,210만원을 바꿔준 사례를 소개하며 당일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1,160원대(팔 때)에 거래된 것보다 40∼50원을 더 얹어줬다는 것이다.

사실 기사는 세계 경제 불안으로 달러환율 상승폭이 요동을 치자 갖고 있는 소액의 달러를 환전하는 사람들이 급증해 남대문시장과 명동 일대에 밀집해 있는 암달러상과 공인환전소가 바빠진 동향을 보도한 것이다. 그러나 기사에서는 이러한 동향 외에도 불과 ‘페니’(penny)의 절반에 달하는 ‘차익’(?) 마저도 챙기기 위해 서슴없이 법을 무시하는 인식이 버젓이 자리 잡은 한국 사회의 한 면모도 엿볼 수 있다. ‘대통령 친인척·비리 태스크포스’? 한국에서는 절대로 ‘코미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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