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고도 이기는 법

2011-09-2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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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범 수
(치과의사)

뉴욕 시장을 세 번이나 지낸 피오렐로 라과디아는 본래 판사 출신이다. 하루는 그의 법정에 남루한 노인이 빵 한 덩어리를 훔친 죄로 기소돼 들어왔다. “전에도 물건을 훔친 적이 있습니까?” 노인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처음입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쫓겨난 뒤에 3일을 굶었습니다. 너무도 배가 고팠고 빵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손이 나가고 말았습니다.”

잠시 후 라과디아 판사는 판결을 내렸다. “아무리 사정이 딱하다 해도 훔치는 것은 잘못입니다. 법에는 예외가 없기에 당신에게 10달러 벌금형을 내립니다.” 법정이 술렁거렸다. 딱한 사정을 감안해 무죄 방면될 줄로 알았던 방청석에서는 너무하다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이때 판사가 논고를 계속했다. “이 노인이 법정을 나가면 또다시 빵을 훔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이 사람만의 잘못이 아닙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그를 도움 없이 방치한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도 똑같이 10달러의 벌금형을 내리겠습니다.” 판사는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내 모자에 담았고 방청석 여기저기서 돈이 모였다. 즉석에서 거두어진 57.50달러를 판사가 노인에게 건네주자 그는 그 안에서 10달러를 벌금으로 내고 눈물을 흘리며 법정을 떠났다.


수년 전 한국에서는 한 판사가 법정에서 양쪽의 소송을 취하시킨 아름다운 사건이 있었다. 같은 교회 교인들이 담임목사 청빙 문제로 싸우다가 쌍방 폭행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치료비 청구라는 고소사건으로 비화한 것. 당시 사건을 맡았던 김은구 판사는 법정에서 원고 측 A집사에게 성경 한 구절을 소리 내어 읽도록 지시했다.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고전 6:6~7).

법전 대신 성경을 들고 나온 김 판사는 법에 따라 판결하여 이기고 지는 사람을 가린다 하더라도 결국 양쪽 모두의 마음에 상처가 남을 것을 우려했고 결국은 자신이 먼저 ‘말씀’에 따르기로 했다. 원고 측의 성경이 낭독되는 동안 법정 안을 가득 메웠던 교인들은 숙연해졌고 양쪽 모두 고소를 취하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게 되었다는 것이다.

얼마 전 한국 소년 법정에서도 사랑의 기적이 일어났다. 1년 새 15건의 절도를 저질러 기소된 16세 소녀에게 김귀옥 판사는 청소년 보호시설로 보내는 대신 아무 벌도 내리지 않는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명랑한 모범생이었던 이 여학생은 남학생들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한 뒤 삶이 바뀌었다. 부모님은 충격으로 쓰러졌고 급우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으며 죄책감에 시달리던 소녀는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비행을 저지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김 판사는 법정에서 말했다. “이 아이는 지금 가해자로 여기 서있지만 진짜 가해자는 사회입니다. 아이의 잘못은 자존감을 잃은 것뿐입니다.” 그리고는 떨고 있는 소녀를 앞으로 불러냈다. “나를 따라 큰 소리로 말하거라.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존재다!” 소녀가 쭈삣거리자 김 판사는 다시 큰 소리로 외치도록 시켰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이 말을 외치는 동안 방청객들과 소녀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판사는 법대 너머로 두 손을 뻗쳐 소녀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가로막은 법대가 없었다면 너를 안아 주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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