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무는 고대부터 내려온 아메리카의 농작물

2011-09-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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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잔 김의 길 따라 배우는 스패니시 [25]

오늘은 유럽에 처음으로 선보였던 고대부터 내려오던 아메리카 대륙의 농작물을 소개하는 두 번째 시간으로 ‘고무’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나무의 눈물’이라는 뜻의 타이노 카우츠(taino ca-uchu)에서 만들어진 ‘엘 카우추’(el caucho)라는 고무나무에서 시작되었다. 고대 중남미의 많은 부족국가에서는 고무나무로부터 액체고무를 채취하였는데, 이들은 이 고무를 굳혀서 동그란 형태의 고무 덩어리로 게임을 했다고 한다.

아즈텍인들이 던진 고무 덩어리가 바닥에 부딪친 후 높이 튀어 오르자 스페인 정복자들이 감탄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마야 문명권에서도 이 고무를 이용하여 발을 보호하는 신발을 만들어 신었다는 기록도 있다.


우리가 말하는 고무의 원래 이름은 스페인 사람들이 ‘고무수액’이란 뜻으로 ‘고모르레시나’(gomorresina)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이를 줄여서 ‘고마’(goma)라고 불렀다. 스페인어에서는 오늘날에도 고마라고 부른다.

우리가 사는 LA에서도 자동차 타이어 수리점이라는 뜻으로 ‘고메리아’(Gomeria)라는 길거리 간판을 흔하게 발견할 수가 있다. 그리고 스패니시로 타이어 수리를 하는 사람을 ‘고메로’(Gomero)라고 부른다.

고모르레시나라는 스패니시가 프랑스와 네덜란드, 그리고 일본을 거쳐서 한반도에 들어 왔는데, 사실 우리가 부르는 ‘고무’라는 단어도 일본인들이 고모르레시나의 앞부분만 따서 고모라고 부른 데서 비롯됐다.

한반도에 고무가 들어온 시기는 일제시대 초기였다. 당시 경복궁에서 만국박람회를 열었는데 처음으로 고무신이 선보였다. 그 당시 조선인들 대부분은 짚신을 신고 다녔는데 비만 오면 발을 더럽히는 것은 물론, 짚신의 까칠함으로 인해 발을 다치기가 일쑤였다고 한다. 이를 본 일본 상인들이 조선인을 상대로 아이디어 상품으로 내놓았던 것이 바로 고무신이었다.

말랑말랑한 재질과 예쁜 색깔의 고무신이 선보이자 당시의 조선 팔도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켜 당시, 결혼 혼수품목 1위까지 올랐었다고 기록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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