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인타운 주위의 역사

2011-09-1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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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연중 칼럼>

엊그제가 추석날이었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있을 만큼 어려운 시절에도 풍요롭고 넉넉했던 한국에서의 추석날이 그립다. 이민 와서부터는 그저 송편 한두 개, 어쩌다 대추 몇 개와 토란국까지도 먹는 운 좋은 추석이 몇 번 있었던 것 같고 별 의미 없는 밋밋한, 그저 고국의 명절이구나 하고 덤덤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듯하다.

그래도, 성묘 길에 차창 밖으로 스치던 풍경이며 채 단풍이 들진 않았으나 여름과는 조금 다른 모양으로 가을을 느끼게 하던 나무들의 모습과, 푸르고 높이 보이던 하늘 등 한국의 가을 풍경이 새삼스럽게 그리운 이민생활이다.

1900년 초, 이민선 게일릭호가 하와이 사탕수수 노동자를 태우고 호놀룰루 항구에 도착하면서 시작된 미주한인 이민역사가 벌써 백년이 훨씬 넘었다.


그 이후 1965년 이민자의 출신국가 제한 규정을 완화하는 개정이민법이 발효되면서 한인들의 미국으로의 이민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게 되었으며 1972년 대한항공이 LA에 취항하면서 LA는 본격적으로 미국 내 한국인의 중심도시가 되었다.

지금은 LA가 미국 이민역사의 중심지로, 미국 내 코리아타운 중 가장 많은 한국인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코리아타운의 위치가 다운타운과 LA 서쪽의 바닷가 부촌을 연결하는 중간지역으로, 우리 동포들이 활발하게 비즈니스 활동을 하고 있는 터전이기도 하다.

그동안 올림픽가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던 코리아타운이 지금은 윌셔가로 중심이 옮겨지는 듯 하고, 그 영역을 점점 넓혀가면서 성장된 한인타운의 경제력과 함께 문화적으로도 한인사회를 대표하여 한국을 주류사회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요즘은 한류의 영향으로 백인을 비롯한 여러 타인종들이 식당 등 많은 한인 비즈니스의 고객이 되어 코리아타운을 찾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 한인들에게도 코리아타운이 비즈니스뿐 아니라 베드타운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어 점점 더 많은 동포들이 타운으로 들어오고 있고 고층 콘도를 비롯해 대형 주거단지가 속속 개발되고 있다.

사철 따뜻한 기후와 편리한 교통, 좋은 학군과 주위의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 공간과 샤핑 등 편리한 생활환경을 가지고 있는 코리아타운을 중심으로 한 주위 지역에 대해 조금 알아볼 필요가 있어 공부해 보았다.

우선 코리아타운의 서쪽으로 행콕팍이 인접해 있는데 서쪽으로 라브레아(La Brea)에서 동쪽의 밴네스(Van Ness), 그리고 남북으로는 윌셔 가에서 멜로즈 사이를 말한다. 행콕팍은 1920년대 석유시추로 돈을 번 행콕 가문의 조지 A. 행콕에 의해 그가 나고 자란 ‘라브레아 타르 핏’(La Brea Tar Pit) 주위의 4,400에이커의 대지에 개발되었다.


특별히 교육열이 높은 우리 한인들에겐 명문 공립학교인 3가 초등학교가 속해 있어 더욱 매력적인 주거지역이고 2개의 고등학교와 존 버로우 중학 등이 있다 올해 결혼한 영국 윌리엄 왕자가 미국 방문 때 처음 묵은 숙소(354 N. June Street가 행콕팍 안에 있어서 잠깐 세간의 이야깃거리가 되기도 했었다.

그리고 1900년부터 10여년 간 그 시대 유명한 금융가였던 조지 A. 하워드가 역시 그 당시 이름난 건축가였던 로버트 로완을 통해 LA 다운타운과 해변가의 중간쯤 되는, 지금의 3가와 윌셔, 플리머스와 어빙 사이에, 농촌풍의 아름다운 정원이 딸린 영국식 마을을 조성했는데 이곳이 윈저 스퀘어로, 우리가 알고 있는 윈저 빌리지는 윈저 스퀘어가 넓혀진 것으로 길 이름도 모두 영국식이며 특히 로레인 스트릿은 건축가 로완의 딸인 ‘로레인 로완’의 이름을 따 지은 것이다.

그래서 윈저 빌리지 안의 집들은 행콕팍의 집들에 비해 규모가 조금씩 작고 주위에 유난히 작지만 아름다운 공원들과 나무들이 많은데 이곳은 행콕팍과는 별도의 독립된 지역이며 1911년에 LA 최초로 땅 속으로 전기선을 설치한 지역이기도 하다.

그리고 행콕팍 남서쪽으로, 3가에서 올림픽까지 라브레아에서 페어팩스까지 사이를 미라클 마일이라고 하는데 특별히 이 지역 중 윌셔 가와 멜로즈 스트릿 등은 LA에서 가장 번화하고 인구밀도가 높은 곳으로 다운타운과 베벌리힐스, 그리고 샌타모니카를 연결하는 상업과 교통의 중심지이며 여러 개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모여 있어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문화적인 거리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가수 ‘빌리 조엘’의 노래 가사에도 나오고 크고 작은 영화의 소재가 되어 영화 촬영이 잦은 곳이기도 하다.

이런 미리클 마일도 1920년대엔 포장되지 않은 도로의 농가가 모여 있던 곳이었는데 선구적인 안목을 가진 개발업자인 A.W. 로스가 다운타운과 비길 만한 상업 지구를 만들기 위해 선정하여 개발한 곳이다.

A.W. 로스는 윌셔가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빌딩을 짓는 계획을 세운 후 보행자보다는 자동차로 인한 교통량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해서 도로를 개발하고 그때까지는 없었던 주차공간을 빌딩 주위에 만들었으며 윌셔 가에 처음으로 좌측으로 회전할 수 있는 left-turn lane을 만들기도 했고 미국 최초의 신호등을 설치하여 현대적인 교통과 주차시설의 개념이 시작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코리아타운은 행정구역상 미드-윌셔 지역에 속해 있는데 다음 번엔 LA에서 가장 우리와 밀접한 지역 중의 한 곳인 미드 윌셔 지역과 다운타운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한다.


정연중
(213)272-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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