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소 방 관

2011-09-0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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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하는 삶>

미국에 사는 동안 이런 저런 일로 다섯 번이나 소방관들의 도움을 받았다. 교통사고, 물난리, 화재, 병원 응급실…. 모두가 위험한 장면으로부터 몸을 피할 때 그들은 사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미국인 여성 환자 한 분의 남편이 소방관인데 남편의 안부를 묻는 나에게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남편이 출근을 할 때마다 속으로 이것이 마지막이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서로 말은 하지 않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이것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녀의 시동생도 최근 고된 훈련과정을 마치고 소방관이 되었는데 그들의 핸드북 첫 장에는 ‘소방관의 맹세’라는 글이 적혀 있다. ‘나는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을 기꺼이 도와줄 것을 서약한다. 내 앞에 닥칠 두려움과 맞설 용기, 나아가 정복할 용기를 서약한다. 감당해야 할 어떤 무게도 견뎌낼 심장과 보호해야 할 모든 이를 안전하게 지켜줄 강한 체력을 서약한다. 나보다 남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사랑을 맹세한다.’


현장에 출동했다가 눈앞에서 어린 아기의 생명을 놓쳐버린 한 미국인 소방관이 지은 시는 우리나라에도 널리 소개된 바 있다. ‘소방관의 기도’다. ‘하나님! 제가 출동할 때 아무리 무서운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 아이를 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질린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가냘픈 외침도 놓치지 않게 하시고 빠르게 화재를 진압하게 도와주소서. 맡은 일을 성실히 해내고 최선을 다하게 하시며 이웃의 생명을 지키게 해주소서.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저의 생명을 거두어 가실 때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세 아이를 하나님이 돌보아 주소서.’

‘래더 49’은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자신의 목숨을 던진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선택의 순간에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소중한 생명들을 구해낸 잭(호아킨 피닉스)과 그의 인생 선배이자 소방서장인 마이크 케네디(존 트라볼타)도 일상에서는 한 여인의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빠, 좋은 친구, 따뜻한 이웃이지만 출동 사이렌이 울리는 순간, 그들은 위험에 직면한다. 여느 때처럼 생존자를 구출하던 잭은 뜻하지 않은 사고로 불길 속에 갇히게 되고, 마이크는 그를 구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폭발 직전의 건물, 불길 속에서 사투를 벌이는 잭과 그를 구하기 위해 건물 밖에서 또 다른 사투를 벌이는 마이크…. 그러나 잭은 무너진 철근 건물 화염과 연기 속에서 죽어간다.

마이크는 사랑하는 후배이자 동료인 잭의 장례식에서 이런 추도사를 읊는다. “잭, 너는 다른 이들을 돕고 싶어서 소방관이 되었지. 그 이유 때문에 결국 목숨을 바치게 되었네. 너를 결코 잊지 못해. 너를 안 것이 나에게 큰 기쁨이고 영광이었네. 너는 가장 용감한 소방관! 사람들은 언제나 물어보지. 어떻게 그 위험한 불길 속에 뛰어드느냐고. 잭! 너는 그 질문에 가장 좋은 답을 하였네. 너의 용기가 바로 그 대답이 아니겠는가. 출동 사이렌이 울리면 우린 또다시 소방차에 몸을 싣겠지. 우리 모두 너만큼 용감해질 거야. 우린 너를 추모하지 않고 축하 하겠네. 여러분! 모두 일어나 그의 인생을 축하합시다!”

9.11이 올해로 10주년을 맞는다. 희생자의 가장 많은 숫자가 소방관이었다 한다. 그들의 용기와 희생의 삶에 깊은 감사와 존경을 보낸다.


김 범 수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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