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땅에서 천국을 살다

2011-08-2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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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 이야기

“친구가 잠들었습니다. 좋은 곳으로 가길 바란다, 친구야.” “오늘 언니가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아직도 믿기지가 않네요.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세요.” 한 여가수의 갑작스런 죽음 후 지인들이 인터넷에 남긴 말이다. 사람이 죽고 나면 막연히 ‘하늘나라’, ‘좋은 곳’으로 갔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천국은 죽기 전에 이 땅에서 천국을 맛 본 자만이 갈 수 있다.

성경은 천국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밝힌다. 정금 길, 하나님 보좌 앞의 유리바다, 생명수 강 좌우의 생명나무들은 천국의 작은 한 부분이다. 천국은 구름 위에 그저 둥둥 떠 있는 놀이터가 아니다. 안식뿐만 아니라 일도 하나님의 형상의 본질이다. 천국은 일과 휴식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일을 포함한 문화는 이 땅에서 사람들이 서로 섬기며 행복을 추구하려고 만들어낸 2차 창조의 열매다. 이 문화물 역시 타락 이후 구속의 과정을 거치며 정결케 되어 ‘새 하늘과 새 땅’(계 21:1)에 보존된다.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
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계 21:26).


이 세상은 천국의 희미한 모형이다. 내세를 무시하는 사람들도 이 땅에서 때로 “지옥 같다”거나 “천국 같다”고 말한다. 예술, 특히 모든 노래는 인간의 진짜 본향에 대한 원초적 그리움을 자극한다. 사람들의 유별난 집에 대한 애착 또한 영원토록 안전한 하늘 아버지 집을 반향한다.

뉴욕이나 파리가 뽐내는 낭만적인 도시미, 절묘한 대자연의 풍취도 천국 도시들과 산야의 눈부신 아름다움이 이 땅에 슬쩍 비친 것이다. 천국에서는 더 이상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는 것으로 기쁨을 추구하지 않는다.

마음의 뿌리에서부터 무한히 솟구쳐 오르는 사랑과 기쁨이 충만하다. 지루해질 틈이 없다.

천국은 우주 너머에 있다는 지역적 특성도 갖지만,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의미하는 하나님 나라로 이미 이 땅에 들어와 있다. 물론 재림 전까지는 아직 완성되진 않은 상태다. 천국이 이미 임했다는 데 치우치면 낙관적 승리주의에 빠진다.

자칫 모든 병의 치유와 기적, 죄의 완전한 정복을 지나치게 강조하게 된다. 제자도의 대가로 마땅히 치러야 할 매일의 십자가와 고난은 경시하기 쉽다.

반대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천국을 강조할 경우 비관적 내세주의에 젖어 현세의 기쁨과 즐거움을 부정하는 금욕주의에 빠지기 쉽다. 균형 잡힌 신자는 이미 임한 천국의 승리를 맛보며 살아감과 동시에 현실의 좌절과 실패 속에서도 고통을 넘어서 천국의 완성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기다림의 인내 가운데 살아간다.

가정이나 교회, 사회에서 크고 작은 일들을 하나님께 향한 예배요 찬양이 되게 살 때 일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신비를 누릴 수 있다. 받은 달란트로 이 땅에서 많은 섬김의 열매를 남긴 자에게는 천국에서 더 많은 일이 맡겨진다.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마 25:21).


거기서도 모든 일을 사랑으로(고전 16:14), 예수 이름으로(골 3:17),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고전 10:31) 섬길 것이다.

천국은 어디든 하나님이 계신 곳이다. 이 땅의 삶은 그분과 동행하며 천국을
준비하고 연습하는 삶이다. 가장 똑똑하고 멋진 애벌레도 나비만 못하지 않겠는가.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 13:44).


(끝)


안 환 균 <사랑의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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