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49년만의 재회

2011-08-1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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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눔의 행복>

매주 수요일은 시애틀 월드비전 미국 본부에서 약 1,200명의 직원들이 모여 실천하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 사역의 초심을 되새기는 채플이 있는 날입니다.

지난 8월10일에는 특별한 채플이 열렸습니다. 미 서부 특별 순회연주를 위해 방미한 36명의 월드비전 선명회 어린이합창단이 초청된 것입니다. 8월6일 시애틀에서 시작해 18일 남가주 부에나팍에서 2주간의 순회연주을 마치는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기로 한 것입니다. 1시간의 채플시간이 모두 할애되었으며, 들뜬 직원들이 일손을 내려놓고 참석했습니다.

연주 직전 합창단의 탄생배경을 담은 영상이 뜨고, 한국이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바뀐 것, 따라서 합창단의 노래에 담긴 메시지도 우리나라에 대한 도움 요청에서 과거 한국처럼 힘든 다른 나라에 대한 도움을 호소하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사실도 소개 되었습니다.


드디어 연주가 시작돼 천상의 하모니가 채플룸을 채웠습니다. 찬양곡이 불릴 때는 아멘의 화답이 있었고, 직원 대부분이 미국인임을 감안한 합창단의 배려로 미국 포크송이 연주되자 박자에 맞춘 박수가 어우러졌습니다. 고운 한복으로 바꿔 입은 단원들의 부채춤, 북춤 등이 아리랑과 함께 휘몰아칠 때는 기립박수와 함께 “원더풀!”이 연호되었습니다.

감동과 흥겨움이 갈수록 고조되는 동안, 잠시 후 밀려올 감동의 클라이맥스를 예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연주가 끝날 무렵이었습니다. 한 직원의 초대로 온 마음씨 좋게 생긴 할머니 한 분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한마디 해도 될까요?”하는 것이었습니다. 공연 내내 우셨는지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월드비전 후원자입니다. 후원을 시작한 지 올해로 꼭 49년이 됩니다.” “Oh, my goodness!” 직원들의 감탄사가 터져 나옵니다.

“그리고 제가 후원자가 된 것은 1962년 월드비전 선명회 어린이 합창단의 공연에서였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드라마 연출이라 해도 이보다 극적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분은 합창단의 첫 미주 순회연주 때 참석해 그들의 노래를 들었던 49년 전 그날 한국전쟁 고아들을 도와달라는 호소를 듣고는 후원을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한국이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된 1991년까지 한국 어린이들을 후원하셨던 그 분은 이제 다른 나라 아동을 후원하고 있다면서 “오늘은 제 인생에서 가장 뜻깊은 날입니다. 49년 전 제 기도는 부디 한국과 그 나라의 고아들이 전쟁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저는 제 기도가 이뤄졌음을 확인했습니다. 이 어린 천사들의 노래와 메시
지야말로 제 49년 후원의 결실입니다.”

49년의 세월을 격하고, 똑같은 합창단을 보게 될 줄이야? 하물며 당시의 남루하고 불쌍한 모습과는 사뭇 다른 활기 넘치는 아이들을 보게 될 줄이야? 그분은 감격을 흐르는 눈물로 대신하셨고 그 눈물을 이내 합창단원들을 비롯, 우리 모두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분의 후원 49년은 우리 민족의 가난 극복의 역사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오늘도 아프리카에서는 최악의 가뭄으로 1,300만이 아사 직전에 놓여있다는 소식이 우리의 귀를 찌릅니다. 이미 최소 2만5,000명의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생업에 바쁜 우리는, 과거의 아픔을 기억 저편 너머에 묶어놓은 우리는, 그들의 신음에 무심합니다.

49년 전 한국이라는 최극빈 신생 독립국가에서 온 40여명의 아이들의 노래와 호소를 듣고 기꺼이 손을 내밀었던 평범한 한 후원자가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은 너무나 명쾌합니다. 그것은 바로 앞으로 49년 후, 그 나라의 어린이를 만났을 때 우리가 전할 말을 만드는 것입니다.


박 준 서 (월드비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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