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교하는 삶 무기수 K의 소원

2011-08-14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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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2세 수감자 K는 서른일곱 살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열아홉 살에 프리즌에 들어갔으니 세상에서 지낸 시간만큼 긴 세월을 철창 안에서 살아왔다. 1급 살인. 28년에서 최고 무기형. 소년에서 청년기를 지나 어느덧 장년이 된 K가 얼마 전 COR 미션(김운년 목사)을 통해 편지를 보내왔다. 영문의 긴 편지 안에서 그는 ‘운명이 갈리던 그날 밤’ 이후의 심정을 회개의 눈물로 그리고 있다.
“모든 것이 나만의 잘못은 아니라는 변명을 대며 지내온 지난 18년의 세월을 후회합니다. 나는 진실의 그림자 뒤에 숨어서 오랜 시간을 비겁자로 살아왔습니다. 법정에서나 남들 앞에서 수많은 이유를 들이대며 항거했습니다. 그러나 감방 안에 혼자 있는 시간이면 지워질 수 없는 진실이, 잠 못 이루는 나 자신을 밤낮으로 짓누르고 괴롭혀 왔습니다. 더 이상 진실 앞에 비겁자로 남을 수 없기에 여러분 앞에 무릎 꿇고 죄과를 시인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나 때문에 귀한 생명을 잃은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그 당시에나 지금이나 다 나의 잘못이며 죽는 날까지 나의 씻을 수 없는 잘못임을 시인합니다. 그동안 수없이 속으로 반복했습니다. 실제로 내가 죽인 것은 아니잖아!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있던 너의 잘못도 있어, 라고. 그러나 그 변명은 옳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합니다… 아이… 앰… 쏘리!”
K는 피해자와 그 가족 앞에 드리는 사죄와 함께 편지를 이어갔다. “사건이 일어나던 그날 밤을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나는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며 그 사건으로 인해 삶이 바뀌어버린 여러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믿지 않으시겠지만 나는 이 세상에서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피해자 C를 그리워합니다. 그날 이후 실종된 나 자신의 존재와 함께! 차라리 내가 피해자였더라면… 하나님, 그날 밤 왜 나를 데려가지 않으셨나요? 왜 피해자와 가해자의 위치를 바꾸어주지 않으셨나요? 왜? 왜? 나는 대체될 수 있는 물건을 훔친 것이 아니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한 인간의 고귀한 생명을 훔쳤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언젠가 여러분의 심장 안에 나의 사죄를 받아주실 수 있는 아주 작은 공간이 생겨나기를… 나를 용서해 주실 수 있는 한 치의 틈이라도 생겨나기를… 감히 바라 봅니다…”
K는 그가 한때 위협한 사회를 향하여도 사과하고 있다. “이 사회의 건설적인 일원으로 살지 못했던 나를 용서해 주십시오. 무가치한 짓거리를 일삼고, 비뚤어진 뒷길로 달려온 나의 그릇된 선택이 여러분이 속한 사회의 균형 잡힌 조화로움을 깨뜨렸습니다. 진심으로… 아이… 앰…쏘리!”
18년 전, 형량을 선고하며 판사는 법정에 앉은 K를 향해 소리쳤다. “너는 인간이 아닌 괴물이다!” K는 말한다. “맞습니다. 그때는 그랬습니다. 남을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인 인간은 인간이라고 불릴 수 없습니다.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지난 과오를 회개하며 나에게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괴물이 아닌 인간으로 거듭 태어나기를 소원합니다. 내 마음 아주 깊은 곳에 자리하신 주님이, 괴물이었던 나에게도 한 조각 선이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앞에 진심으로 무릎 꿇고 용서를 빕니다. 아이… 앰… 쏘리!”
K에게는 사건 당시 갓 태어났던 딸이 있다. “입양이 되었을 텐데 잘 자랐다면 지금 18세일 것입니다. 죽기 전,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나보게 도와주십시오. 널 낳은 아빠는 더 이상 괴물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거듭난 인간이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김 범 수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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