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책임윤리를 상실한 강경론자들

2011-08-03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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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 한층 더 강경해 진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집단 토론이라는 과정을 거치면 토론을 하지 않았을 때보다 더 위험한 행동방침을 지지하게 된다. 심리학자들은 편견이 심한 학생들이 함께 모여 인종 문제에 대한 토론을 하게 되면 편견이 더욱 심해지는 것을 발견했다. 반대로 편견이 덜한 학생들은 토론 후 편견이 더욱 줄어들었다.

이처럼 집단을 이루면 개인이 혼자 결정할 때보다 더 극단적인 결론으로 치닫는다. ‘집단 분극화’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집단을 이루면 개인일 때보다 더 강경하고 극단적이 된다는 사실은 왜 정치인들 개인끼리는 친한데 정당으로 만나면 허구한 날 싸움질인지를 설명해 준다.

한 조직 내에서 강경한 목소리와 온건한 목소리가 부딪힐 때 흔히 득세하는 것도 강경파이다. 강경파의 논리는 선명하다. 온건파의 논리는 일면 유약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논리와 명분 싸움에서는 대부분 온건파가 밀리게 마련이다.


역사는 이런 사례들을 무수히 보여준다. 2차 대전 당시 일본은 패색이 짙어진 상황에서도 확전일로를 걸었다. 군부 내에서 강경론자들이 득세했기 때문이다. 강경파들은 이런 말로 온건파들을 제압했다. “당신들은 목숨이 아까워 그런 것 아닌가.” 이 말 한마디에 토론은 사라지고 전쟁은 확전으로 치달았다.

강경론은 화끈해 보일지 몰라도 타협의 정신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천신만고 끝에 어정쩡한 합의안을 도출한 미국의 부채상한 증액 협상 역시 일부 강경파들의 몽니 때문에 어려운 길을 돌아와야 했다. 공화당의 극우세력인 티파티 의원들은 “타협은 곧 정치적 패배”라는 식의 강경한 태도로 일관해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온건파까지 곤욕을 치렀다.

사실 미국이 처해 있는 현재의 재정상황은 부자증세에 극력 반대하면서 명분 없는 전쟁들을 적극 지지해 온 극우 강경론자들의 책임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240명의 공화당 하원의원들 가운데 50명 정도 되는 티파티 의원들은 오바마와의 정치적 협상 자체에 극도의 거부감을 보였다.

오바마에 대한 적대감이 너무 지나쳐 주위에서 “그러다간 다음 선거에서 힘들 수 있다”는 조언을 해도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들이었다. “나 하나의 정치 생명을 잃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결연함이 전쟁을 부추긴 일본 극우주의자들의 광기와 닮아 있다. 티파티 의원들은 원래가 보수적인 이념을 가진 인물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티파티라는 구체적인 정체성으로 묶이고 세력화 되면서 한층 더 강경해지는 집단 분극화의 길을 걸어왔다.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보려는 극우 의원들의 행태에 민주당과 오마바는 물론 같은 공화당 동료들까지 불편함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들의 정치적 운명은 동료들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유권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 합의안의 내용도 어딘가 마뜩치 않고, 게다가 마지막까지 국민들의 가슴을 졸이게 함으로써 분노와 절망감은 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그 책임소재가 어디에 있는지를 놓고 내년 11월 선거 때까지 공방은 계속될 것이며 유권자들은 표로 심판할 것이다.

부채 증액 협상은 일단 마무리 됐지만 뒷맛은 씁쓸하다. 파국은 피했어도 미국의 신뢰는 큰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미국의 장래에 대한 낙관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200년이 넘도록 온갖 위기와 갈등 속에서도 미국을 지탱시켜 온 타협과 대화의 정신이 실종돼 가고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20세기 초 독일의 사회과학자인 막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인이 가져야 할 덕목으로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꼽았다. 그러면서 현실정치에서 더욱 필수적인 것으로 책임윤리를 들었다. 책임윤리가 뒷받침되지 않는 정치인은 국민들의 복리보다 자신의 신념을 우선시 하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념윤리만 너무 강한 정치인은 도덕적으로는 깨끗할지 몰라도 사회적으로는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타협을 거부하면서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 정치적 입장만을 고집하는 티파티 의원들이 바로 그렇다.

클린턴 행정부 때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는 “올바른 정치가 회복되지 못할 경우 민주당과 공화당에 대한 중산층의 분노와 반발이 확산돼 2020년 대선에서는 배타적 애국주의와 고립주의를 주장하는 독립적인 정치세력이 집권할 지도 모른다”는 전망을 한 적이 있다. 지금처럼 타협과 대화 실종상태가 지속될 경우 그의 암울한 전망이 현실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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