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속의 부처 - 위대한 품바

2011-06-0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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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이 걷히기 시작하자, 숲에서 피어오른 새벽녘의 생기가 들숨에 묻어 폐부 깊숙이 스며든다. 충분히 상큼하다. 하루가 일어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조용히 바쁘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 날의 새벽에도 만물은 게으르지 않았다.

이제, 동녘 하늘을 열고 솟아오른 태양이, 그렁저렁 흘러 서녘 하늘 아래로 가뭇없이 사라지면, 또 그 날은 닫힐 것이다. 얼핏 보기에, 별로 기특할 것 없어 심심하고 밍밍한 그들의 일상이 시작될 즈음이다.

탁발을 나서야 할 시간이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사위성(sravasti)은 푸르스름한 여명 속에 잠겨 있다.


장엄한 탁발의 행렬이 성을 향해 점점이 이어진다.

그들은 스스로 가난을 선택한 품바들. 이른바 자발적 결핍상태를 버티며 살아가야 하는 걸사(비구)들이다. 세속적 가치와 인연들을 분연히 포기하고, 인간의 삶을 보편적으로 지탱하는 그 달콤한 야만성(?)을 미련 없이 잊은 출가수행자들이다. 비록, 그들의 육신과 행색은 메마르고 거치나, 그들은 단순한 가출자가 아닌 눈빛 형형한 출가자, ‘당당한 품바’들이다.

벌써 저만치, 불끈 솟은 태양이 막무가내로 뿜어내는 황금색 빛살은, 세상 번
뇌와 맞싸우는 그들의 전투복이며 해탈복인 낡은 넝마 위에서, 온화한 위의가 배어나는 맑고 환한 면면 위에서, 할 수 없이 부서져 흩어진다. 찬연스럽다.

그 길 위에는, 그렇게 산화한 무량한 빛알들과 간간이 이는 산산하고 ‘가만한 바람’ 속을 절대묵언인 채, 오직 그 적요를 밀고 나아가는 엄중한 행(行) 만이 있을 뿐이다. 그 깊은 침묵은 철저한 자기부정을 통해 ‘자기’를 극복한 인격의 힘을 성취하고, 절대 자유와 행복을 말할 수밖에 없어 말할 수 있을 그 순간까지, 마음의 궁극적 이완인 ‘평화로움에 머물’고 ‘고요한 거주’가 완성되기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들은 중요한 수행덕목의 하나인 무소유의 청빈을 위해, 몸과 마음의 일용할 양식을 탁발에 의탁한다.

그러나 탁발은 단순히 밥을 구걸하는 ‘비럭질’이 아니다. 때로, 탁발 중에 겪게 될 수모와 먹을거리에 대한 편견 따위의 장애를 통해, 수행의 가장 큰 적인 아만과 차별심을 없애고 인욕과 겸양의 미덕을 배우는 신성한 의무이다.

또한, 중생들이 그날의 삶을 잘 경영할 수 있도록, 하루의 시작을 보시로 선업을 쌓게 하려는 깊은 배려가 담겨 있다. 따라서 탁발은 출가수행자들의 거룩한 종교의식인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붓다(속성은 고타마)께서 탁발을 나가셨다. 평소, 비구들이 탁발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바라문 계급의 한 농부가 붓다를 보고 비난조로 힐문하였다.


“고타마시여, 나는 땀 흘려 밭 갈고 씨앗 뿌려 내가 먹을 양식을 마련하고 있소. 당신도 그리해야 되지 않겠소?” “바라문이여, 나도 밭 갈고 씨 뿌려 양식을 얻고 있소이다.”

“고타마시여, 우리는 누구 한 사람 당신이 밭 갈고 씨 뿌리는 모습을 본적이 없소. 당신의 소는 도대체 어디에 있소?” “믿음은 내가 뿌리는 씨앗/ 지혜는 내가 밭을 가는 쟁기/ 나는 몸에서 입에서 마음에서/ 나날이 악한 업을 제어 하나니/ 그것은 내가 밭에서 김매는 것/ 내가 모는 소는 정진이니/ 가고 돌아섬이 없고/ 행하여 슬퍼함이 없이/ 나를 편안한 경지로 나른다./ 나는 이리 밭 갈고 이리 씨 뿌려/ 감로의 열매를 거두노라.”

물론, 영원히 죽지 아니할 그 불사의 열매는 ‘위대한 품바’ 붓다의 시여로써, 마땅히 중생들의 몫이 된다.


박 재 욱
(나란타 불교아카데미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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