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말기현상과 양심파산

2011-06-01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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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8일자 신문을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에게 사과 드립니다”라는 글이 게재되어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이 글에서 “저와 제 주변의 돈 문제로 국민 여러분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 드리고 있습니다. 송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자신의 비서관이 박연차 씨에게 3억 원을 받은 것은 부인인 권양숙 여사가 시켜서 한 행동이라는 양심선언이다. 이 사과의 글이 나온 지 한달반 후 노무현 전 대통령은 투신자살했다.

그의 자살은 권력과 돈이 얽히면 어떤 비극이 찾아오는가를 보여준 한국 근대정치사의 교훈이다. 이같은 비극이 일어난 게 엊그제 같은데 그 뼈아픈 교훈을 살리지 못하고 지금 또 이명박 정권에서 부산저축은행 사건과 같은 권력비리 대형 부정이 터져 나오고 있다.

세상에는 그럴 수도 있는 일이 있고 그럴 수가 없는 일이 있다. 경찰관이 범죄행위에 가담한다면? 종교인이 부도덕하다면? 판사가 지나친 편견을 갖고 있다면? 은행가가 고객의 돈을 마음대로 빼서 쓴다면? 감사원의 감사위원이 피 감사기관으로 부터 돈을 받았다면? 이것은 그럴 수가 없는 일에 속한다.


한국의 부정부패는 불가사의 수준이다. 상식으로는 납득이 안 될 정도다. 대통령의 측근중의 측근이라는 사람이 감사위원으로 앉아 있으면서 돈 몇 천 만원 받고 감사정보를 흘리고 무마에 앞장섰다면 이런 사람을 그런 자리에 보낸 대통령의 시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말썽을 일으킨 당사자는 이명박 대선캠프의 법률 지원단장을 지냈으며 BBK사건을 책임지고 있었다니 그가 어떤 식으로 BBK를 수습했는지 의심스럽다. 이런 측근을 부정을 바로 잡는 감사위원(차관급)에 앉힌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듯이 대통령의 주변인물을 보면 대통령이 어떤 스타일의 지도자인가 윤곽이 떠오른다. 이명박 대통령은 김영삼이나 김대중과 같은 정치인 출신이 아니다. 경제인 출신이다. 그래서 주변에 모인 참모들도 오래 따라다닌 가신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그 때 그 때 선발된 능력위주의 인물이 대부분이다.

일 잘하고 성과만 올리면 유능한 참모로 인정받는다. 정치철학 같은 건 우스운 이야기다. 이런 참모들은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게 되고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자신의 보신부터 생각하게 된다. 결국 이같은 자세는 한탕주의로 기울게 되고 이는 집권자의 권력누수로 연결된다. 여기에서 말기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은행파산의 경우 미국은 10만 달러까지 정부가 예금주를 보호하지만 한국은 5,000만원에 불과하다. 이자 몇 푼 더 받아 여생을 보내겠다고 저축은행에 퇴직금을 맡긴 3만8,000여명이 땅을 치고 울고 있다. 은행이 이들이 맡긴 돈 3조원을 부동산 투자에 날리고 그것을 눈감아 주는 대가로 감사위원과 은행감독위원이 돈을 받은 것이다. 게다가 은행은 은행대로 문 닫기 전 몇몇 유력한 사람들에게만 먼저 알려주어 돈을 빼가게 한 것이다. 총체적인 양심파산이다.

저축은행 파산의 주범은 부동산 투자다. 정부가 세종시 건설이니 과학벨트니 4대강 개발이니 하는 계획을 남발해 전국에 부동산 붐을 부채질 했고 이에 눈이 먼 은행이 고객의 돈을 빼내 투자하다가 부동산 붐이 꺼지자 파산에 이른 것이다. 부산저축은행 사건이 확대되어 다른 은행으로 튀면 경제파동을 불러올 수도 있다. 한국의 부동산파동이 미국의 월가파동과 너무나 비슷한 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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