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월의 단상

2011-05-14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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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 에세이

지나고 보니 3년의 세월이 순식간에 가버린 느낌이다. <시작이 반이다>라고 한 속담을 실감한다. 딸이 대학원 공부를 시작할 때 두툼한 바퀴달린 가방에 책을 넣고 왔다갔다 했다. 바지차림의 스튜어디스가 바삐 걸어가는 것 같았다. 무거운 책이 든 가방을 옆에서 쳐다볼 때마다 나에겐 3년이란 시간이 너무도 길게 느껴져 암담했다. 어떻게 버텨낼까 은근히 염려되었다. 공부를 끝내고 계절의 절정인 5월 15일 드디어 졸업식이다.

그동안 내가 한 일은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늦게 귀가하는 딸을 위하여 드라이브 웨이를 비워 두는 일뿐이었다. 깜박 잊을 때가 종종 있었지만 무거운 가방을 운반하기 쉽도록, 밤늦은 시각 안전을 위하여 집에서 멀리 주차하는 일이 없도록 배려했다.

딸은 엄마의 사정을 알기에 집에서 학교에 다니기는 하되 나에게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았다. 장보기도 게으르고 샤핑도 싫어하는 나의 성격을 잘 아는지라 먹고 싶은 음식은 틈틈이 직접 사와서 요리했다. 어쩌다 백화점에 들를 때면 오히려 내게 필요한 티셔츠와 청바지 등을 사다 주었다.


딸은 고등학교 시절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제일 듣기 좋은 소리란 말을 나에게 한 적이 있다. 아마 이 말은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연년생인 오빠와 늦둥이 막내 사이에 낀 딸은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 할 일이 많아서 어릴 적부터 언제나 마음이 분주했다. 엄마가 집에 있으면 일단 막내에게 잔손 가는 일로부터 한숨 돌릴 여유가 있었다. 엄마가 집에 있다고 알려주는 확실한 소리인 세탁기 소음이 정답게 들린다고 했다. 지금도 막내는 옷을 사는 일부터 시작해 온갖 의논상대로 엄마인 나보다 제 누나를 주로 찾는다.

직장 다니던 딸이 집에 살며 대학원 공부를 하게 되어 우리 부부는 3년 내내 좋았다. 막내가 대학 기숙사로 들어가 우리 부부만 남으면 빈 둥지신드롬에 시달릴 뻔 했는데 딸이 집에서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어쩌다 한가한 날에는 집에서 영화 DVD를 함께 본 날도 있었지만 시간이 없어 샤워도 못하고 긴 머리를 꽁지머리로 묶고 급하게 학교로 향한 날이 훨씬 많았다. 그렇게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저녁에 공부하면서 마시느라 작설차를 끓일 때는 꼭 아빠 것도 함께 끓여주던 딸이 남편에게는 참으로 흡족하였을 것이다.

이제 공부를 마치고 곧 직장을 따라서 집을 떠날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허전한 마음이 앞선다. 지난 3년 간 한집에 살아준 것은 딸이 우리에게 베푼 작은 기쁨이었음을 깨닫는다.

앞, 뒷마당의 장미가 만발하고 치자꽃도 창가에 피었고, 성급한 수국도 그늘을 환하게 밝히며 피었다. 계절의 여왕 오월이라 원래부터 이달은 눈에 들어오는 나무와 꽃들 모두가 “세상은 아름답고 행복하다”고 외치는 듯하다. 딸이 학업을 마치니 내가 큰 공부를 끝낸 것처럼 5월초부터 덩달아 행복한 마음에 푹 빠져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 마음 한 켠에서는 불황의 짙은 그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혼자서 이런 셈을 하며 버틴다. 성경에서 애급의 풍년이 7년간이었고 흉년 또한 7년간이었으니 이제 머지않아 불황에서 벗어나리라.

2011년 하고도 중반이니 2년쯤 버티면 곧 좋은 시절이 우리 모두에게 찾아올 것 같은 예감을 굳게 믿는다. 어린 아이처럼 틈만 나면 손가락을 꼽고 있다.


윤선옥
동아서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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