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1-05-12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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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년 만에 수문이 열리고
수몰지구의 물이 반쯤 빠지자
강 한가운데 한 그루 나무가 드러났다
한바탕 속절없이 눈물을 방류한 뒤
눈동자를 바라보면
기다리던 사람 보이기나 하는 것인가
아무리 커도 절망은
나무의 키를 넘지 못한다는 듯,
흐르는 물살에 못 이겨
마을이 사라지고 길의 지도가 지워진 뒤에도
쓰러지지 않고 서 있는 저 나무는
지나가던 물고기들의 집
기도를 올리던 사원이었을 것이다
꽃잎을 피울 수 없지만
스스로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저 나무를
죽었다고 말할 수는 없으리
아무리 슬픔이 길어도
강의 길이를 넘지 못한다는 듯
해오라기 한 마리
선 채로 입적한 등신불 위에 앉아
강 끝을 바라보고 있다


송종찬(1966 - ) ‘물 속의 사원‘ 전문


가뭄으로 드러난 수몰 지구를 다리 위에서 내려다 본 적이 있다. 한 때는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땀과 눈물을 흘리던 곳. 삶이 빠져나가버린 그곳은 오래된 사원과 같이 적막했고 경건했다. 화자의 눈에도 물 빠진 수몰 지구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사원처럼 느껴진다. 나무는 순례자가 된 화자에게 진리를 말해준다. 슬픔이 아무리 깊고 길다 한들 언젠가는 수몰 지구처럼 잠기게 될 것이며 흘러가는 저 강물처럼 끝이 있을 것이라고.


김동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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