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버림의 미학

2011-04-23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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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참 뭘 못 버린다. 다 나름 추억이고 어느 하나 버릴 데 없는 소중한 것들이란 생각 때문이다. 대부분의 물건들은 금전적이나 장식의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닌, 지극히 평범하지만 사연이 들어 있는 자잘한 것들이다.

언젠가 “복잡한 환경 속에서는 어떤 좋은 생각도 떠올릴 수 없다”라는 글귀가 마음속에 꽂히더니 이곳저곳서 비우라는 문구들이 자꾸 눈에 뜨이면서 집안을 확 뒤집어 대대적인 정리정돈을 해야겠다는 독기(?)를 품게 되었다.

버리는 것쯤이야 우습게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힘 풀리고 자세가 퍼지더니 얽힌 사연 곱씹고, 감상에 젖어 물건들 만지작거리다가 결국 용두사미가 됐다. 정작 내다 버린 건 작은 쓰레기봉투 한 두개였다.


그러나 이 일을 점차 반복하면서 요령이 생기더니 이제는 제법 많이 버리게 됐다. 그러다가 몇 주 전에는 웬만한 영수증과 자질구레한 노트를 모두 다 갖다 버렸다.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비움의 묘미를 조금씩 깨달아 간다.


전진영/ 동양인진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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