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에 따른 유니폼은 그 직업의 상징이 된다. ‘백의의 천사’로 불리는 간호사의 흰 가운이 좋은 예이다. 간호사라는 직업을 가졌다고 실제로 ‘천사’일 수는 없겠지만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에게 간호사의 손길은 그 순간 천사의 손길이다.
병원에서 보는 또 다른 유니폼, 의사의 흰 가운이 갖는 상징성은 거기서 한 단계 더 올라간다. 생사를 넘나드는 중환자나 그 가족들에게 의사는 구세주나 다름없고, 의사의 흰 가운은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낼 수 있는 막강한 힘의 상징이 된다. 병원 밖에서 아무리 지위가 높다 해도 일단 환자로 병원 안에 들어서면 의사의 말에 100% 복종하게 되는 데, 그 직업적 권위를 주는 것이 일차적으로 의사 가운이다.
의사들이 흰 가운을 입게 된 유래 역시 알고 보면 ‘직업적 권위’와 상관이 있다. 의사들이 지금과 같은 가운을 입기 시작한 것은 100여 년 전. 그 이전까지 서양에서 의사들은 전문직으로서의 권위를 갖지 못했다. 주먹구구식 돌팔이 이미지가 강했다고 한다.
19세기 후반 과학에 기초한 현대의학이 발달하면서 의사들은 이전의 이미지를 지우고 과학자다운 면모를 갖고 싶었다. 그래서 당시 과학의 상징으로 보이던 실험실의 흰 가운을 입기 시작한 것이 의사 가운의 유래이다. 가장 처음 의사 가운을 도입한 사람은 캐나다, 몬트리올 종합병원의 의사이자 캐나다 의료협회 회장이었던 조지 암스트롱으로 전해진다.
의사 권위의 상징인 흰 가운이 도마 위에 올랐다. 환자들의 병을 고치기보다 오히려 병균을 감염시키는 매개가 된다는 지적 때문이다.
환자가 병원에 가서 더 병이 도진다는 말은 전부터 있어왔다. 그도 그럴 것이 온갖 질병을 가진 환자들이 모이는 병원은 병균의 집합장이고, 환자들은 면역력이 약해져 있으니 감염 위험이 그만큼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이때 병원균을 이 환자에서 저 환자로 옮기는 주요 매개체가 의사의 가운이라는 조사 결과들이 수년째 발표되고 있다. 가운 중에서도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주머니와 소매.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는 자연스런 동작 중에 옷깃이 스치면서 병균이 옮겨진다는 것이다.
가운과 함께 병균의 온상으로 지적된 것은 의사들의 넥타이. 몇 년 전 뉴욕의 퀸스 메디컬 센터는 의사와 의대생 40명과 경비원 10명의 넥타이를 조사했었다. 그 결과 의사들의 넥타이 절반에서 세균이 검출된 데 비해 경비원의 넥타이 중에서는 한 개에서만 세균이 검출 되었다.
이런 지적들에 따라 영국에서는 이미 지난 2008년부터 의사들의 흰 가운 착용을 금지했다. 가운과 함께 넥타이, 긴 소매 셔츠도 착용금지 품목이다. 미국의료협회는 의무조항은 아니지만 각 병원에서 자체적으로 의사 가운을 금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사실상 미국에서도 가운을 입지 않는 의사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그런데 정작 의사 가운이 사라지는 것을 섭섭해 하는 측은 의사들 보다 환자들이다. 의사들은 가운이 덥고 거추장스럽다며 좋아하지 않는 반면 환자들은 평상복 차림의 의사보다 가운 입은 의사를 선호한다. 의사가 흰 가운을 입어야 권위가 선다는 것이다. “여객기 조종사가 청바지에 티셔츠 입고 조종실로 들어가면 승객들이 미더워할까? 의사도 마찬가지”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