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1-04-12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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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꽃들에겐
설운 이름 너무 많다
이를테면 코딱지꽃 앉은뱅이 좁쌀밥꽃
건드리면 끊어질 듯
바람불면 쓰러질 듯
아, 그러나 그것들 일제히 피어나면
우리는 그날을
새봄이라 믿는다
우리나라 나무들엔
아픈 이름 너무 많다
이를테면 쥐똥나무 똘배나무 지렁쿠나무
모진 산비탈
바위틈에 뿌리내려
아, 그러나 그것들 새싹 돋아 잎 피우면
얼어붙은 강물 풀려
서러운 봄이 온다

김명수(1945 - ) ‘ 우리나라 꽃들에겐’ 전문


유식하고 힘 있는 사람들은 외국말을 자주 사용하는 걸 자랑으로 여기고 우리말을 무시해왔다. 그래서 우리말 이름에는, 반만년 동안 우리말을 쓰고 살아온 민초들의 서러움과 아픔이 담겨있다. 외국 이름을 가진 꽃들이 아무리 화려하더라도, 우리 할머니의 눈물을 닦아주고 얘기를 나눠주던 꽃들은 아닌 것이다. 이름처럼 쓰러질 듯 약해보이지만, 우리 꽃들이 일제히 피어날 때 겨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한다. 우리는 그날을 고운 우리말로 ‘새봄’이라고 이른다.

김동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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