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갈아입기’
2011-04-07 (목) 12:00:00
14년 넘게 입어온 청바지 무릎이 해졌다
날실은 닳아 없어지고 수평의 씨줄만 남아 있다
내 청춘의 무릎도 저만큼 환부를 드러냈을 것이다
사람들은 내 청춘에서 어떤 수평을 보았을까
청춘을 질주해 온 내 걸음 오래오래 바라보니
나의 수직을 코바늘처럼 당겨대는 무릎이
바로 전 한 걸음을 그림자에 얽어 짠다
수직이 무릎을 다시 잡아당기고,
내 몸을 닮아가는 그림자만 수평으로 누워 있다
내가 몸속에 빛을 켜면 드러나는 저 몇 자의 피륙에서
내 청춘은 등잔 기름처럼 닳고 있다
이토록 환한 만성통증을 외면해온 나여
네게로 가는 門인 네 환부를 바라보아라, 그러면
꼿꼿이 서려고만 했던 나 지워진 어느 날
어두워서 뚜렷한 네 그림자를 밟고 있을 것이다
그날은 전생으로 떠났던 한 사람 돌아와 무릎 끓고
네 그림자를 오려서 기워 입을 것이다
차주일(1961 - ) ‘그림자 갈아입기’ 전문
20년 가까이 청바지 제조업을 하고 있으면서도 지나치고 있었던 인생의 진실을 이 시로부터 깨닫는다. 삶이 청바지처럼 닳아진다니 참으로 다행이다. 시간이 지나도 젊은 날의 오기와 자존심만으로 꼿꼿이 서 있기만 하다면 얼마나 꼴불견이겠는가. 닳아 해져, 수평의 씨줄만 몇 오라기 남아있는 청바지 무릎 사이로. 비로소 알몸의 내 실체가 보인다. 수직의 무릎을 꺾고, 내 그림자가 드러난 환부를 감싼다. 오랜 상처를 깁는다.
김동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