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름다운 죽음

2011-04-0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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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11일 일본열도를 강타한 대지진과 쓰나미의 충격이 온 세계를 뒤흔들었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21세기 최첨단 문명의 화려함이 대자연의 엄청난 힘 앞에서 휴지조각처럼 무용지물이 되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입에서도 ‘마지막 때’라는 단어가 절로 터져 나온다. 넘치는 죄악들과 깨어진 가정들, 악해진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한 범죄, 종교인들까지도 세상의 가치에 목을 매는 안타까운 모습들이 불신자들로 하여금 ‘말세의 끝’이라는 탄식을 하게 하나 보다.

지진이라면 우리가 사는 LA도 안심할 게 아닌데도, 아직도 남의 일처럼 무감각하게 느껴진다면 심각한 인생 불감증 아닐까? 평생을 일군 생활터전과 물질적 풍요, 문명의 이기들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 번 인생의 덧없음과 삶의 본질과 목적을 깊이 묵상하게 된다.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온 날들은 무엇을 위함이었나?’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단 1초 후의 미래도 예측하지 못하는 존재가 인간임을 확인했다면 살아 숨 쉬고 있는 현재의 삶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지난 몇 주는 남편과 아이들, 매일 만나는 성도님들, 이웃, 부모, 친지들과 진지하게 고민을 나누었던 시간이었다. 결국 결론은 부끄러운 과거를 거울삼아 지금부터라도 한 순간, 한 순간을 진실하게, 정직하게, 성실하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임을 깨닫는다. ‘누구 때문에’라는 핑계와 책임전가로 나의 부족함을 메우려 하지도 말자. 지금 나의 현실은 내가 선택한 최선이었고,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는 것이다.


지난달 교회의 어머니셨던 84세 권사님의 천국환송예배가 있었다. 슬하에 7남매를 두셨는데 한국과 미국 여러 주에서 어머니의 부음을 듣고 앞다퉈 달려온 유족들과 감격스런 장례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육체적 이별 앞에서 슬픔과 안타까움도 가득했지만 48명의 자손들이 훌륭하게 성장, 사회 각계의 존경받는 리더로 우뚝 선 모습을 바라보며 권사님의 가정이 믿음의 명문 가문임을 실감했다. 평생 기도로, 희생적 사랑으로 자녀들의 본이 되셨던 귀한 권사님, 마지막 가시는 날까지도 자녀들에게 큰 감동을 주셨던 권사님은 이 땅의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온몸으로 말씀하셨다. 미소 띤 평안한 얼굴로 조객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셨던 권사님은 천국에 입성하셨음을 확증하셨던 천국 메신저셨다.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의 삶은 진지하고 진실할 수밖에 없다. 예측불가능한 마지막이 내게도 온다는 사실을 안다면 오늘 함부로 말하고 행동할 수 없을 것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인생이라면 조금 감정이 상했다 할지라도 함부로 화를 내고 남을 욕하고 헐뜯는 유치한 인생을 살지 않을 것이다. 내 삶을 바로 살기에도 하루가 짧고 모자라는데 남의 험담하면서 금쪽같은 시간을 허비한다면 얼마나 불쌍하고 가엾은가. 지혜로운 인생은 마지막 날을 준비한다. 땅의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높은 하늘 가치를 발견하는 인생은 참으로 복되다.

그 찬란한 아름다움을 향해 내가 밟는 땅을 천국으로 만들고 싶다. 오늘도 열심히 천국의 언어를 연습한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감사합니다! 용서합니다! 기도합니다! 행복합니다!” 평범한 날이 홀연 황홀해진다.


정한나
남가주광염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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