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2011-03-22 (화) 12:00:00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이성부(1942 - ) ‘봄’ 전문
지난겨울은 유독 춥고 길었다. 깊은 경제 불황, 수만 명의 인명을 앗아간 자연재해와 전쟁, 그리고 민주화 운동 등으로 세상은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기다림에 지쳐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라 할지라도, 비록 더디기는 하지만 마침내 올 것이 오고야 만다는 것을. 눈부신 봄, 희망의 봄, 민주화의 봄, 평화의 봄이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오고야 만다는 것을.
김동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