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건이 발생한다. CNN이 달려가고 전 세계의 시선이 한 데로 모아진다. 그 대사건을 배경으로 휴먼 드라마가 연출되면서 한 가지 명암이 교차된다. 누가 ‘승자’(winner)이고 누가 ‘패자’(loser)인가 하는 식으로.
지난 한 주 이상 전 지구촌의 시선은 일본으로 모아졌다. 진도 9.0도의 대지진이 덮쳤다. 그 바로 뒤로 최악의 쓰나미가 덮쳤다. 그리고 원전사고가 발생했다.
자연재해로 시작된 인간비극의 이 대참화에서도 ‘위너’는 있었다. 일본 국민이다. 그렇게 침착할 수가 없다. 절망 속에서도 남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는다. 그들의 그런 모습이 하나의 감동으로 전해졌다.
‘루저’는 간 나오토를 비롯한 일본 정부 지도자들이다. 우왕좌왕 허둥댔다. 소통의 리더십이 실종됐다. 미적거렸다. 그래서 화를 키웠다는 비난이 따른다.
세계의 시선은 이제 리비아로 쏠렸다. 자국민을 향해 무차별 공습을 가하던 무아마르 카다피를 응징하기 위한 서방의 군사개입이 펼쳐지면서다. 아직은 작전 초기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도 ‘위너’와 ‘루저’는 갈리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는 원하던 것을 마침내 획득했다.” LA타임스의 논평이다. 아랍의 민주화는 결국 좌절되고 마는 것인가. 탱크와 전폭기를 동원해 진압에 나섰다. 핏빛으로 물든 카다피의 광기를 목도하면서 사람들은 치를 떨었다.
그 리비아에 마침내 서방의 개입이 이루어졌다. 서방 다국적 연합군의 공습이 시작된 것이다. 동시에 사르코지에 조명이 맞추어졌다. 서방의 군사개입에 있어서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은 프랑스이고 그 중심인물은 다름 아닌 사르코지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왜 사르코지는 리비아 개입에 그토록 적극적이었나.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온다. 2012년 대선재선을 겨냥한 것이라는 것이 그 중의 하나다. 인기가 말이 아니다. 그 인기 만회 책으로 채택한 것이 강공외교라는 이야기다.
아마 틀린 지적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의 정치적 계산이야 어떻게 됐든 사르코지의 외교는 일단 대성공을 거두었다.
더 이상 방관했다가는 더 큰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 그리고 대량살육을 중단시키기 위해 역사 앞에서 프랑스가 그 역할을 맡았다는 사르코지의 선언에 이의를 제기할 명분은 찾을 수가 없어서다.
한 인물이 이 사르코지와 대조된다. 미합중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다. 망설임의 연속선상을 헤맸다. 재스민 혁명이 발발한 이후 줄곧 그가 보여준 행보다.
민주화 세력이냐, 독재자냐. 그 선택에서부터 머뭇거렸다. 유엔에 비행금지구역 설정안을 제의하는 데에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공습결정을 하는 데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에게 붙여진 새로운 별명은 ‘프레지던트 햄릿’이다. 아직은 조금 더 두고 보아야겠지만 리비아 공습사태에서 오바마는 어딘가 ‘루저’로 부각되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