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칼論 2 - 허약한 詩人의 턱밑에다가’
2011-03-17 (목) 12:00:00
뼉따귀와 살도 없이 혼도 없이
너희가 뱉는 천 마디의 말들을
단 한 방울의 눈물로 쓰러뜨리고
앞질러 당당히 걷는 내 얼굴은
굳센 짝사랑으로 얼룩져 있고
미움으로도 얼룩져 있고.
버려진 골목 어귀
허술하게 놓인 휴지의 귀퉁이에서나
맥없이 우는 세월이나 딛고서
파리똥이나 쑤시고 자르는,
너희의 녹슨 여러 칼을
꺾어 버리며, 내 단 한 칼은
후회함이 없을 앞선 심장 안에서
말을 갈고 자르고
그것의 땀도 갈고 자르며
늘 뜬눈으로 있다
그 날카로움으로 있다.
조태일(1941 - 1999)‘식칼論 2 - 허약한 詩人의 턱밑에다가’ 전문
시인은 말을 갈고 자르는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뼈도, 살도, 혼도 다 잘라버린 시를 쓰게 되는 경우가 있다. 현실과 타협하고, 알맹이도, 껍질도, 날카로움도 없는 시를 쓰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을 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조태일 시인은 허약한 시인이 될까봐 늘 뜬눈으로 자신을 경계하며 칼을 갈던 시인이었다. 조 시인과 같은 진짜 시인이 그립다.
김동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