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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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칼럼/ 허가도면

2011-03-1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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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삼(소유디자인그룹 대표)

이탈리아, 그리스 계통의 민족들은 다혈질인 경향을 지닌 사람들이 많다. 정도 많고 다툼도 많고 주변이 어수선하고 북적거린다. 우리 한민족도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지 않나 싶다. 냄비 근성도 여기에 한 몫을 하는 게 사실이다. 두서없이 웬 민족성 타령이냐고? 필자가 몸담고 있는 건축분야는 이러한 성향들이 일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에 이 자리를 빌어서 한 번쯤 짚고 넘어 감이 어떨까 해서 이렇게 서두를 시작한다. 소위 말하는 공사에는 엄연히 따라야 하는 절차가 있다. 물론 한국과 미국의 시스템을 비교하면 매우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미국에서 한번이라도 공사를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경험을 해본 교민들이라면 두 나라의 행정
상의 확연한 차이에 혀를 내 두른 경험을 했으리라 본다. 한국에서는 총 공사의 시작과 끝이
고작 한 달 정도면 마무리 될 수 있는 일이 여기서는 허가 도면 제출 후에 공사를 허가받는 데만 무려 한달 정도의 시간이 요구되니 시스템 자체가 모르긴 몰라도 무척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인지 공사를 준비하는 한인들의 마음은 너무나도 급하다. ‘빨리 빨리, 하루라도 더 빨리’에 의해 움직여지는 허점투성이의 허가도면은 타운에 접수된다. 접수를 방해하는 타운 공무원은 아무도 없다. 최소한 여기까지는 성격 급한 우리 교민의 승리로 볼 수 있다.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다. 뭔가가 접수되었다는 만족감, 혹은 금방이라도 공사 허가를 받을 것 같은 기대감? 그런데, 바로 이 시점에서 필자는 한인 여러분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하나 던지고자 한다.


이렇게 서둘러 허가 도면을 접수한 후 빠른 시간 내에 아무른 문제없이 공사 허가서를 타운으로 부터 받은 분은 과연 몇이나 될까? 운 좋게 아무런 제재없이 공사허가를 받는 소수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경우는 서둘러 우왕좌왕 만들어낸 도면치고 한두 군데 문제없는 도면은 극히 드문 게 현실이다. 그렇게 접수된 도면은 타운 인스펙터들의 작업 도마 위에서 면밀히 검토된 이후, ‘Denial(거부)’ 혹은 ‘Re-submit(다시 제출)’ 이라는 공문서를 받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의 손에서는 빠른 시간 내에 떠날 수 있는 것이 허가 도면이지만 정작 그 허가 도면을 승인할 타운의 인스펙터들은 대충 대충 도면들을 검토하지 않는데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나는 나의 허점을 모르고 적은 나의 허점을 아니, 이 싸움은 시작도 하기 전에 백전백패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허가 도면이 허점투성이가 되면 일단 인스펙터들의 리스트에 오를 수밖에 없다. 우여곡절 끝에 공사 허가를 받아, 공사를 시작하더라도 인스펙터들의 표적을 피하기는 쉽지 않다. 그 만큼 타운에 제출하는 도면은 허가 도면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 한인들은 이
런 도면에 대해 너무 안일한 태도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종이 한 장 그리는데 시간이 뭐가 그리 오래 걸리나?’ 혹은 ‘뭐 이거 한 두장에 얼마나 한
다고요?’ 쉽게 접할 수 있는 반응 들이다. 우리 손에서 우리가 검토할 수 있을 때 충분한 시간을 투자한다면 이런 문제점들은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렇게 충분한 검토를 하는 경우 정작 혜택은 클라이언트에게 돌아가는 것이라는 사실, 건축 설계사에게 이득을 주는 일이 아니라는 점,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서 허가 도면의 내부 사항을 숙지함으로써 앞으로 진행되는 공사 과정에 대한 보다 폭넓은 이해는 공사업자들과의 작업과정에서도 한 발 앞서 전체 과정을 컨트롤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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