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터뷰 - 평양성의 이준익 감독

2011-02-02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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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계층·세대·이념 갈등 시대극 형식을 빌려 뜨겁게 찍었다"
"관객과 소통 못해 이번에도 손실 나면 감독 자격 박탈이죠"

관련기사’황산벌’(2003)은 이준익 감독에게 남다르다. 영화사 씨네월드 대표로 활동하던 그가 감독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영화기 때문이다. ‘황산벌’의 속편인 ‘평양성’을 8년 만에 선보인 그는 감회가 새로운 듯했다.

지난 8년의 시간 동안 그는 ‘왕의 남자’(2005)라는 흥행 신화를 일궈내기도 했고, ‘님은 먼 곳에’(2008)와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2010) 등으로 연달아 쓴 잔을 마시기도 했다. ‘평양성’ 개봉 다음 날인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이 감독은 "온 몸이 부서져라 찍은 영화라 난 굉장히 만족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평양성’은 668년 나당연합군의 고구려 평양성 함락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밑그림 삼았다. 남건(류승룡) 남생(윤제문) 남산(강하늘) 등 고구려 지도부의 분열, 김유신(정진영)의 노회한 지략, 백제군 출신으로 다시 신라병에 징집된 거시기(이문식)와 생계를 위해 자원 입대한 문디(이광수)의 무지렁이 같은 사연 등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 낸다.

"인물 하나하나가 지닌 가치를 드러내는 게 내 연출법이다. 나쁘게 보면 산만하고, 좋게 보면 풍부하다. 몇몇 인물에만 집중하며 전쟁을 소재로 코미디가 들어간 영웅주의 영화를 만들 수 있지만 난 그게 싫다. 획일화한 영웅주의보다 모두가 주인공인 방식으로 관객과 소통하고 싶었다."

그는 "계층 세대 이념 등 대한민국 3대 갈등을 ‘평양성’에서 다루려 했다"고 말했다. "그런 욕심 때문에 관객에게 확 다가가기 힘든 면이 있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평양성’은 이 감독의 다섯 번째 시대극이다. 그는 "현대를 배경으로 현실 정치를 비판하면 이해관계가 얽혀 드니 시대극을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젊은 세대에게 잘 통하지 않는 시대극 연출은 중견 감독의 소명이라고도 했다.

"시대극을 반복적으로 찍으면서 난 민초들의 삶이 어떤 이념보다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황산벌’에서 계백이 가족까지 죽이며 전쟁터에 뛰어들었는데 결국 그 허명의식이 만들어 낸 미래라는 게 평양성 전투다. 어떤 전쟁도 민초들의 일상보다 중요할 순 없다. ‘황산벌’보다 빵빵 터지는 웃음이 없다는 비판도 있는데 웃음은 영화의 수단일 뿐 목표는 아니다."

’왕의 남자’가 흥행 돌풍을 일으킬 때 그는 "인생은 화투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해가 떠 판을 끝내기 전까진 일희일비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였다. 그는 "’왕의 남자’ 이후 (돈을) 많이 잃었는데 이젠 꽁지돈(노름판 사채)을 빌릴 수도 없다"고 했다. 이 감독은 ‘왕의 남자’ 이후 ‘라디오 스타’를 제외하고 3편이 손실을 기록했다. ‘평양성’은 개봉 첫 주 38만9,202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을 모았다.

"이번에 또 손익분기점(270만명)을 못 넘기면 (상업영화 연출) 자격 박탈이다. 누가 돈을 대 주겠나. 난 ‘평양성’을 뜨겁게 찍었다. 그래서 관객과 뜨겁게 만나고 싶다. 관객이 냉담하면 내가 조용히 사그러져야지. 한계에 부딪히면 못하는 것이지. 독립영화해야지."

그는 시대극이 더 진화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서구는 ‘벤허’ ‘십계’ 등을 거쳐 판타지 ‘반지의 제왕’까지 진화했다. 나도 차곡차곡 계단을 쌓아 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엔 나당전쟁을 다루고 싶고 고조선 같은 신화나 설화를 판타지로 만들고 싶다. 내가 못하면 후배들이라면 했으면 하는 생각이 꿀떡 같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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