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누구에게 입히느냐를 먼저 정하라”

2010-11-05 (금)
크게 작게

▶ 베라 왕의 성공을 부르는 ‘디자인 법칙’

심은하와 김남주, 전도연이 선택한 웨딩드레스가 베라 왕(Vera Wang) 브라이달 컬렉션이다. 지난여름에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딸 첼시 클린턴이 베라 왕이 제작한 오프숄더의 몽환적이면서 층층이 쌓인 듯한 로맨틱 웨딩가운을 선택했다.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는 원칙으로 단아한 신부의 아름다움을 살리면서 깨끗하고 순수한 느낌을 강조하는 베라 왕 웨딩드레스는 신부들의 로망. 샤론 스톤은 무명시절 자신이 유명해지면 베라 왕 드레스를 입고 공식석상에 나가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1999년 최고의 여성 그룹 ‘스파이스 걸스’의 멤버 빅토리아가 축구 선수 베컴과 결혼하며 베라 왕의 웨딩드레스를 입었고, 맥 라이언, 우마 서먼, 제니퍼 로페즈 등 수많은 할리웃 스타들이 웨딩드레스로 베라 왕을 택했다. 올해로 디자이너가 된지 20년째 접어든 베라 왕은 브라이달 라인과 기성복 라인, 출판, 향수, 뷰티, 액세서리, 홈 라인을 갖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렇다면 베라 왕이 패션계에서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샤론 스톤 오스카 드레스로
패션계·대중들 이목 집중


1. 무엇을 디자인하는가가 아니라 누구에게 입히는가를 생각하라.

베라 왕은 런웨이 컬렉션을 런칭하기 전 레드 카펫 드레스로 인해 씨름을 했다. 1990년부터 웨딩드레스를 디자인하고 1994년 피겨스케이트 선수 낸시 케리건의 올림픽 의상을 디자인했던 그녀였지만 셀러브리티를 위한 레드 카펫 드레스는 전혀 새로운 세계였던 것. 영화 ‘퍼니 걸’(Funny Girl)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입었던 아놀드 스카시 의상이나 셰어가 입은 밥 맥키 의상처럼 튀는 스타일도 있었지만 지금 이 시대처럼 레드 카펫 드레스가 독특하고 다양하지 않았다.

그래서 발렌티노, 알마니와 함께 ‘레드 카펫 드레스’ 전쟁에 뛰어들었다. 1998년 오스카 나잇에서 샤론 스톤이 입은 퍼플 스커트와 화이트 버튼-다운 셔츠 콤보는 베라 왕을 유명하게 만드는 더 없이 좋은 계기가 됐지만 지금 오스카 시상식 패션은 너무나 경쟁이 치열해 ‘패션 올림픽’을 방불케 한다고 덧붙였다.

2. 타이밍이 중요하다.

베라 왕은 스포츠웨어 디자인을 하고 싶었지만,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은 ‘이브닝웨어와 브라이달’ 패션에서 기회가 있었다. 1987년 크리스탄 라크로와(Christian Lacroix)가 쿠틔르 하우스를 런칭한 후 패션계의 판도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베라 왕은 띠어리(Theory)와 탑샵(Topshop)의 시대인 지금이라면 분명 반대로 컨템포러리, 일상복으로 출발할 것이라고 말한다. 운도 따라야 한다.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의 취임식 드레스 디자이너로 발탁된 제이슨 우처럼 신진 디자이너가 성공하려면 운이 따라야 한다. 또 기회를 잡았을 때 성공할 수 있는 스마트함도 필요하다.




지난 200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국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는 실크 소재 원 숄더 베라 왕 드레스로 베스트 드레서의 영예를 차지했다.


트렌드 따르기보다 개성 살려야

문화적 흐름 파악은 중요
고객의 취향 고려 최우선

3. 패션에서 새로운 것은 없다. 재해석을 어떻게 하는가에 달렸다.

기능성과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 다양한 의류가 만들어진다. 디자이너에게 도전은 이를 트위스트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돈 때문에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항상 돈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비즈니스 여건을 현실적으로 직면해야 하므로 베라 왕은 끊임없이 비즈니스 모델을 재정립한다. 현재 베라 왕은 코올스(Kohl’s), 데이빗 브라이달(David’s Bridal)처럼 중저가 라인을 포함한다.

4. 일관적인 품질과 무결성을 유지한다면 관련성을 논해야 한다.

2010년 여성들은 그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예산에 지장을 주지 않는 옷을 원한다. 아무리 컬렉션이 뛰어나도 대량 소매되지 않으면 빛을 보기 힘들다. 여성들은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고 바쁘게 뛰어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나 가격에 상관없이 패션을 즐기는 세상이다. 가격이 비싸든 싸든 상관없이 샤핑을 하는 이유는 예뻐 보이기 위해서다.

베라 왕은 스타일만큼은 평등해야 한다고 말한다. 향수는 자신의 이미지를 어필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향수 광고는 브랜드 이미지를 좀 더 광범위한 소비자들에게 알리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구두는 패션을 바라보는 시각(attitude)이다. 플랫슈즈, 힐, 어그 부츠 등은 모두 각기 다른 모습을 지니고 다른 스타일을 낳는다.

6. 패션은 자기표현이다.

베라 왕은 20년 전에는 패션에 법칙이 있었다. 오찬에는 펌프 구두를 신고 에르메스 가방을 드는 것 같은 법칙. 그러나 지금은 프레피룩이든, 다운타운룩이든 자신의 개성을 잘 살리기만 하면 된다.

디자이너 모두가 스스로의 지표(baro-meter)를 갖고 있다. 디자이너라면 문화적인 트렌드를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특정 컬러나 실루엣이 아무리 유행한다 해도 컬렉션에 전혀 어울리지 않으면 트렌드에 편승할 필요가 없다. 스스로에게 자신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7. 스타일링과 드레싱, 디자인, 그리고 여성을 위한 디자인에 20년을 보내면서 결코 고객을 과소평가한 적이 없다.

베라 왕은 한 번도 자신의 컬렉션을 택한 여성들을 남성이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한다. 여성이 예쁘고 섹시하다고 생각하면 그녀는 예쁘고 섹시한 거다. 기성복(Ready-to-wear)은 언제나 베라 왕의 컴포트 존(편안한 영역) 밖에 존재한다.

베라 왕에게 디자인이란 고문과 같다. 결코 쉽지 않아서 좋다. 항상 스스로를 컴포트 존에서 밀어내려고 애쓰는 모습이 너무나 즐겁다. 웨딩드레스(Bbridal)는 보수적이지만 대담하다. 브라이달 컬렉션만큼 광범위한 취향을 고려해야 하는 디자인도 없다. 대부분의 신부들이 꿈꾸어온 웨딩드레스가 있기에 패션 트렌드에 영향을 받지도 않는다. 베라 왕에게 웨딩드레스 디자인은 영화 의상디자이너 에디스 헤드의 정신을 발휘하는 것이다.

8. 용기가 필요하다.

디자이너가 컬렉션을 발표한 후 평가를 접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평가가 좋든 나쁘든 이를 마주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운동복 디자인은 승부와 직결된다. 베라 왕의 인생에서 스케이팅은 너무나 중요했다. 올림픽 선수로 선발되지 못했지만 자유롭게 빙판 위를 날아다니는 의상을 꿈꾸며 낸시 케리건, 미셸 콴 등의 스케이터복을 디자인했다.

9. 언제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베라 왕이 랄프 로렌으로 옮긴 것은 보그(Vogue)에서 더 이상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생각에서다. 이 경험은 그녀에게 인생을 헤쳐 나가는 법을 터득하는 기회로 작용했다. 팀웍이 중요하다. 어떻게 보면 패션은 팀 스포츠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패션에도 팀이 중요하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나갈 수 없다.

10. 월계관을 썼다고 자만하지 말고 끊임없이 사투하라.

한 시즌에서 한 번의 시상식에서 승자가 되었다고 자만하지 말라. 다른 시즌에는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모두가 다른 여정을 간다. 베라 왕은 다른 디자이너, 비즈니스 우먼, 아내 혹은 어머니와 스스로를 비교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모두가 자신의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한다. 어떤 여정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없다.


2006년 뉴욕 패션위크에서 호평을 받은 베라 왕 컬렉션.


<글 하은선 기자·사진>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