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0월 16일이고 금요일이다. 어제밤 자기전에 오늘 입을 옷만 빼고 짐 전부를 문밖에 두었고 그동안 모아놓은 잡동사니 무게도 상당 했다. 크루즈사에서 발행한 22일간의 청구서를 한줄씩 체크해 보니 다 맞는 것 같으나 다 합한 액수는 생각보다 많았다. 배는 시비타베치아항에 아침 7시전에 무사히 도착했고 우리는 텐트 안에 옮겨놓은 짐을 찾고 여행사에서 마련한 버스에 올랐다. 단체로 움직이면 항상 하자가 생기고 이번에는 자기짐을 찾지 못한 동행자 때문에 부두에서 무려 두시간을 지체 했고, 로마의 다빈치 (Fiumicino) 공항 옆 한적한 곳에 있는 힐튼호텔에 12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오늘 로마에 가 몇 군데 더 둘러 보기로 한 여정에 차질이 있을 것 같다. 가방들을 방에 넣고는 호텔 셔틀버스를 타고 공항의 기차역에 와 로마 가는 기차를 탔다. 25일전에 갔던 그 기차길이나 지금은 무거운 짐도 없고 이태리말 몇 개도 안다. 역에 내려 근방에 있는 성모 마리아 큰 (S. Maria Maggiore)성당으로 갔다.
이 성당은 고대 로마시대인 CE 400년부터 지었다고 하며 본래 건물을 헐지 않고 중수에 중수를 거쳐 지금에 이른 성당이다. 25개가 넘는 로마의 마리아 성당중 규모도 크고 제일 역사 있는 곳이다. 약 70년간의 불란서 아비뇽 (Avignon)에 있던 교황의 성당을 1378년 로마로 다시 옮기고 1626년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이 완공 될 때까지 이 성당을 교황성당으로 사용한, 로마
에서는 몇 번 째 드는 성스러운 성당이라고도 한다. 모자이크로 호화롭게 금붙이로 지나치게, 또 벽화로 훌륭하게 치장된 교회본당과 사방 채플이 있었다. 전도자 성 누가가 그렸다고 추정하는 제일 오래된 성모상도 있고 1570년대에 파리에서 가톨릭 신자들에게 피살된 몇 만 명의 개신교신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모뉴멘트도 어디에 있다고 들었다. 로마에서 제일 높은 종탑도 있고 성자 칭호를 받은 사람들의 납골당도 있다.
마리아 대성당 앞 대로 메루라나 (Merulana)가를 따라 2,30분 내려오면 성 요한 성당이 있고 성 지오바니 (Giovanni) 성당으로도 불리는 이 대성당은 로마의 주교 즉 교황의 성좌도 있는, 로마뿐아니라 전 세계의 성당 중 모성당 (Lateran)이라고도 한다. 콘스탄틴 (Constantine) 대제가 하사한 땅과 재정으로 지어진 실로 오래된 이 성당은 교황의 거처를 아비뇽으로 옮기기 전까지 교황청으로 쓰였었다. 이 성당의 수호성자는 예수님이고 수호성도는 세례요한과 사도요한 임을 본당의 입구에 분명히 해 놓았다. 조각된 천정, 모자이크된 벽, 아취형의 우람한 기둥, 압도되는 12제자의 대석상들, 로코코 (Rococo) 식의 과한 장식등을 십자형 성당내부에서 본다. 여기에도 교황들의 무덤이 있는 모양이다. 3,500년 전에 이집트에서 만들고 CE 350년에 장물로 로마에 갖고 온 제일 크다는 석첨탑을 이 성당 앞 광장에 우뚝하니 세워 놓았다.
로마에는 성당도 많고 이들 성당 중 1600년 이상의 역사를 갖은 곳도 많다. 중앙역으로 돌아오는 길에 조금 두르더라도 또 다른 오래된 홀리 크로스 성당으로 갔다. 로마의 콘스탄틴 대제의 모친이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을 순례하고 오면서 갖고 온 수난지의 흙을 이 성당 바닥에 뿌려 신성한 곳으로 만들었고 또 골고다의 언덕에 있던 십자가 일부와 성 도마의 뼈 일부도 갖고 와 이곳에 두었다는 설도 있는 곳이다. 성스럽게 여긴다며 중세때는 여자들의 출입도 금지 시킨 곳이라고도 한다. 이곳의 조금 북쪽에는 CE 3세기때 축조한 로마를 둘러싸는 아우레리안 (Aurelian)성벽이 있고 동대문 (Porta Prenestina) 격인 큰문이 비교적 완전하게 서 있었다. 20세기 초엽에 이 성문 밖 땅속에 묻힌 귀중한 CE 1세기 고고의 건물을 발굴 했는데 그곳은 기독교이전에 있던 희랍철학에 근거한 다신 종교의 회당이며 본당, 천정, 제단등 회당의 모습이 초기성당과 거의 일치 한다고 했다.
다섯 시간의 짧은 방문으로, 이름난 가톨릭 성당의 역사적 배경도 알아보고 장엄하고 호화롭고 과시적인 모습도 보았다. 수난과 어려움에 처한 또 약한 자를 도우고, 인간의 원죄를 없이하고 구원하는데 도대체 이 과대한 치장의 성당과 감히 도전 할 수 없는 권력과 층층시하 계급적인 조직과 또 그들의 가르침이 꼭 필요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하느님이 임하시는 곳은 위엄과 중압의 모습이 담긴 곳이어만 하는가? 사랑과 은혜는 전매품이 아닐진대 왜 교황을 통하고 그의 해석과 설교로만 이 은혜가 하달되어야 하는가? 이 성지들을 보며 서양의 역사와 사회, 건축과 예술, 인류 발전상의 보존적 관점으로는 성당보
다 좋게 음미 할수 있는 곳은 별로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로마의 중앙역까지 걸어오니 저녁 6시가 넘었고 다시 기차 타고 셔틀버스 타고 호텔에 오니 밤 8시가 넘었다. 한밤만 더 자면 집으로 가니 설레고 무사히 끝낸 여행이었으니 감사하고, 지난 26일간을 뜻 있게 보냈느냐고 누가 물으면 그렇다고 답할 것 같았다.<끝>
로마의 아우레리안 성벽의 동대문격인 포타 프레네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