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독자여행기/ 버몬트 2박 3일 가을단풍

2010-10-22 (금)
크게 작게

▶ 청명한 하늘아래 시선 한가득 가을 담아

글: 에스터 김(뉴욕일요산악회회원· 에스터직업소개소)
사진: 정영은(뉴욕일요산악회 회장)
버몬트 시골 풍경


이번 일요 산악회(정영은 회장)의 산행은 뉴욕에서 300 마일 정도 달려가야 하는 버몬트(Vermont)의 킬링톤 마운틴(Killington Mt.)으로 10월 9일부터 11일까지 2박 3일간 여행을 다녀왔다.

산행을 나서면, 다양한 산들을 만나는 설레임만 아니라, 오가는 길에 만나는 낯선 장소나 낯선 사람들과의 조우도 또 다른 즐거움을 주곤 하는데, 사실 이번 산행은 등산했던 Killington Mt.의 가을풍경도 대단했지만, 오가며 들렀던 유리 공장, Harpoon Beer 공장, Que Chee 농장, 콘도의 노천탕에서 동행한 벗들과 나누었던 여러 체험이나 대화도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상행 중에 처음 들른 곳은 유리 제품을 만드는 공장이었다. 직접 제품을 만드는 현장 견학은 너무 뜨거운 열기 탓에 오래 머물 수 없었지만, 제품을 진열한 곳에서는 한 동안 발길을 뗄 수 없었다. 유리 제품들의 화려한 색깔이 빛에 반사되는 것을 바라보자니, 말 그대로 “영롱하다”라는 말이 실감나는 시간이었다.


그 중에서도 크리스마스 트리로 만들어진 제품에서는 오랫동안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유리 나무에 매달린, 꽃, 과일, 동물, 식물 등의 각종 장식용 유리 제품을 바라보면서 신데렐라가 춤추었던 무도회장을 연상하기도 했다.
술을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상행 길의 Harpoon Beer 공장에 들르는 것엔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더구나, 마음껏 마실 수 있다 하지만 15달러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니!. 하지만 잠시 밖에 머물 수 없는 우리 사정을 얘기하자, 회사 측에서는 무료입장 뿐만 아니라 한 잔씩의 시음을 권하기까지 했다.
평소 한 모금도 넘기지 못했던 내가 한 잔을 다 마셔서 주위를 놀라게 했는데, 같이 동행했던 이들이 환호와 함께 보내 준 박수는 그 날의 안주였던 셈이다. 새삼 얘기하지만, 그 날 맛보았던 쌉쌀한 맥주 맛은 며칠이 지난 지금도 맛이 느껴질 만큼 매혹적인 것이었다. 회사 측의 융통성 있는 조치가 적어도 한 명의 새로운 고객을 확보한 셈이다(매출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추워질 날씨를 예상해서 예약한 콘도에 도착했을 때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각 동 앞의 개방형 창고에 가득히 채워진 장작 더미였다.

짐을 풀고, 각자가 집에서 준비해 온 여러 가지 반찬과 음식을 함께 하면서, 우리들의 작은 식탁을 더욱 풍성하게 한 것은 활활 타오르는 장작
불의 불빛과 온기였다.누구나 마음대로, 무제한으로 장작을 사용 할 수 있었는데, 손님들에게 따뜻한 휴식을 충분히 취할 수 있도록 하려는 콘도측의 배려를 눈에 보는 듯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수영을 하고 노천탕을 들렀다. 따뜻한 물 속에 몸을 담그고 머리로는 가을을 만끽했다. 노천탕 주위를 둘러싼 가을 나무의 노랑, 위로 한 시선에 잡히는 눈이 시리도록 청명한 하늘의 푸름, 그리고 내 주위를 빙빙 돌며 이따금 떨어지는 낙엽들. 갑자기 작년에 가신
어머님!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팔을 아무리 길게 펼쳐 봐도 닿을 수 없는 손길, 그리운 모습에 눈물이 솟구친다.

그렇게 시선 한 가득 가을을 담고서 시작한 그 날의 산행은 온 산에 가득한 가을 속으로 떠난 또 다른 산행 속의 여행 이었다.Killington의 스키장은 전문 스키어들이 모여 드는 명성처럼 천혜의 조건과 책을 펴놓은 것 같은 문필봉의 산세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산의 정경은 모네(Monet)의 풍경화를 보는 것 같다.인생은 한 번 떠나면 다시는 그 자리로, 그 사람으로 돌아 올 수 없는 한 번 뿐인 삶이다. 하지만 나무들은 이파리가 다 떨어지고, 추운 겨울을 맞아 죽은 것처럼 있다가도 봄이 오면 따뜻한 태양 빛을 받아 움이 트고 연한 잎을 돋는다. 그런 자연의 굴레에서 신의 손길을 느끼는 것은 산행을 다니면서 갖게 되는 경험이다. 특히 그런 느낌은 가을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 산행에
선 더욱 강하게 느끼게 된다.

하산을 하면서 메이플(Maple) 농장을 방문했다. 겨울이면 5000 여 그루의 나무에서 수액을 모아, 큰 가마에 넣고 장작불을 피워 각종 쨈과 치즈를 만든다고 한다. 1945년에 시작된 한 일가가 이룬 농촌 사업이다. 언덕에는 까만 소, 얼룩 소, 말들이 관광객을 보며 반겨준다.콘도에 와서 벽난로에 장작을 피우니 그윽한 나무의 향내가 온 사방에 퍼진다. 거실에 누우니 밤하늘의 큰 별과 작은 별들이 보이고 창가에는 단풍들이 살랑거려 내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준
다.10월 11일, 마지막 날에는 곤돌라를 타고 산 정상을 올라갔다. 동부의 그랜드 캐넌이라고 불리는 곳의 풍경을 한 눈에 내려다보면서, 일행 모두의 의견은 단 한 마디-Fantastic ! 을 연달아 외치는 것뿐이었다. “태양 속에 날 태우고 구름 위를 날으네” 라는 노랫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우리가 오른 날이 본격적인 스키 시즌을 앞두고 곤돌라를 운행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다음 날부터는 운행을 중단하고 눈이 오는 날까지 장비점검을 위해 문을 닫는다고 한다. 전망대에서 한 바퀴를 돌아보면 캐나다, 뉴햄프셔, 메인, 메사추세츠, 뉴욕 등이 보인다. 시선을 조금 아래로 하니 산악 자전거를 타는 헬멧 부대들, 등산객들이, 구름 아래로 눈에 들어온다. 구름을 아래로 하고 햇살이 비치는 창가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 침엽수 잎새에 매달려, 햇빛에 반짝이는 물방울들을 바라본다. “Morning has broken” 에 나오는 아침을 직접 맞이하는 것 같다. 곤돌라를 타고 내려오면서 사진을 찍었다. 올라 갈 때는 다들 아름다운 풍경에 정신을 잃어, 사진을 찍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뉴욕으로 돌아오는 길에 호박 농장을 들렀다. 핼로윈 시즌을 앞두고 본격적인 출하를 준비 중인지, 여기 저기 무더기로 호박을 쌓아 놓았다. 우리는 못났다라는 말을 비유해 호박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가을 벌판에 놓인 호박은 진짜 보석에 견주어도 전혀 뒤쳐지지 않을 만큼 멋진 보석들이었다. 더구나 한 편에는 형형색색의 국화꽃들이 그림물감을 흩뿌려 놓은 듯 했다.Que Chee라는 마을에도 들렀다. Que Chee Village 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프랑스 이민자들이 모여 정착한 마을로, 규모는 작았지만 마을 전체가 프랑스식 전원주택풍으로 꾸며져 있어 미국의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유럽을 여행했다는 동행한 이는 프랑스 시골에 온 듯하다고 감탄을 그치지 못했다. 마을에서 직접 생산하는 치즈를 직접 맛보고 구매할 수 있는 시식장과 앤틱(antic)노천 시장도 인상적이었다. 지금도, 한 폭의 가을 풍경화에
잠시 들어갔다 나온 듯한 생각이 든다.

다른 곳의 산행은 주로 산에 대한 기억이 강했다. 하지만 이번 Killington Mt.산행은 산과 더불어, 산 속에 찾아온 가을, 그리고 오가며 시선에 닿았던 갖가지 가을 풍경 또한, 더욱 짙은 추억으로 남은 짧은 여행이었다. 자연과 벗하면서, 어머니, 아버지 생각이 유난했던 시간들이었다. Killington Mt.에서 사진에 담은 아름다운 자연은, 사진에는 다 남아있지 못할 것 같다. 단지 내 추억의 한 편에 자리잡아 조금씩 사라질 것이다.
올라가면서 왼쪽부터 티나 김, 도 정란, 에스터 김, 정 영은, 추 금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