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혹독한 환경극복 속 원주민 생활력에 감탄

2010-10-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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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나 <수필가>
알래스카를 가다


<2> 원주민 센터


시내관광 후 알래스카 원주민 센터를 돌아봤다. 알래스카 인구의 16%를 차지하는 그들은 아메리칸 인디언이 차지하는 미국의 인구 비율과 비슷하다. 원주민들은 11개의 부족으로 나눠져 있고 21개의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이곳 원주민 센터에서는 그 중 가장 큰 다섯 부족을 소개하고 있다. ‘아타베스칸’ ‘유픽과 큐픽’ ‘서그피큐’ ‘이누피크’, 그리고 ‘이야크’ 족이다. 이들은 각 부족마다 종사하는 분야도 모두 다르다.


에스키모 후예들 옛생활의 모습 소개
노래와 댄스, 놀이들 독특한 전통 간직

티켓을 사 가지고 안으로 들어가자 작은 호수 뒤로 병풍을 두른 듯 동그란 원주민 마을 모습이 보인다. 알래스카 지도를 똑바로 펴놓고 본다면 동쪽에는 아타베스칸족, 북서쪽은 이누피크족, 남서쪽은 유픽과 큐픽족, 왼쪽 남부에는 서그피크족, 그리고 동남쪽에는 이야크족이 주류를 이룬다.

원주민 센터 주위로는 알래스카에 흔한 실버 버치나무와 시트카 스푸르스가 바람 따라 살랑살랑 요염하게 몸을 흔들어댄다. 바비큐 그릴에서 풍기는 고기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야외 테이블은 꽉 들어찬 사람들로 앉을 자리 없이 붐빈다.

알래스카 원주민들이 살았던 집. 혹한과 폭설, 그리고 북극곰과 같은 야생동물들을 피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원주민들이 사용했던 카약. 이 조그만 배에 몸을 싣고 북해 얼음바다와 싸우며 생명을 이어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알래스카에 왔으니 연어(salmon)를 먹자고 해 나와 남편은 새몬 샌드위치 그리고 영자씨와 성희씨는 새몬 샐러드를 시켰다.

모처럼 먹어 보는 새몬이 어찌나 싱싱한지 샌드위치가 정말 제 맛이다. 새몬의 고장처럼 어디를 가도 새몬을 빼놓고는 메뉴를 짤 수 없는 모양이다. 캘리포니아에서 흔해 빠진 오렌지가 하나에 1달러25센트다. 비싼 것은 맛도 갑절인 모양이다. 그 오렌지는 유난히 꿀맛이었다. 더 먹고 싶은 것을 너무 비싸다는 생각에 자린고비처럼 참았다.


민생고를 해결한 뒤 원주민들의 집들을 돌아봤다. 지금은 그들이 현대화 된 집에서 문화적 생활을 즐기지만 그들의 옛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것도 앞으로 내딛는 역사를 위해서 짚어보고 가야 하는 과정이다.

행여 길거리에서, 옛날에 책에서 배웠던 에스키모인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기대는 접어야 했다. 내가 알고 있던 그 에스키모인들은 거리에서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많은 관광지에서 혹은 문화센터에서 옛 문화를 소개하고 가르치며 나름대로 봉사를 하고 있었다.

입구에 토텀(totem)이 세워져 있다. 외부 사람들이 알기로 그들의 신앙을 받들기 위해 세웠을 것이라는 토텀은 지금은 빌보드나 사인 폴 같은 역할을 했다. 토텀이란 이름은 알래스카 북서쪽에 있는 원주민의 이름이다.

대체적으로 알래스카 원주민들은 키가 그리 크지 않고 까무잡잡한 피부에 강인한 인상을 풍긴다. 몇 피트씩 쌓이는 눈 속에 긴 겨울을 견디며 최악의 기후와 싸워야 하는 그들은 어릴 적부터 끈질긴 생명력이 길러지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민첩하고 다부진 야생적 기질도 자연스럽게 갖춰야 하는 듯하다.

그들의 체격과는 달리 토텀은 전봇대처럼 껑충하게 세워 1피트반 정도의 고른 간격으로 파서 조각을 하고 색칠을 한 뒤 장식을 했다.

원주민들의 집은 통나무로 이어서 짓고 안에 직사각형의 홀을 만들고 밖은 온통 흙을 덮어 풀이 자라고 있다. 앞에 들어가는 입구가 있고 뒤로 나오는 통로가 하나 있다. 지붕 위에도 흙을 덮어 풀이 자라고 있다. 안에서 문을 닿아버리면 그 어떤 야생 동물의 습격도 막을 수 있다. 또 위로 통로를 만들어 사다리를 타고 드나들게 되어 있는 집들도 있다.

집이 아니라 토굴이라고 해야 함이 맞을 듯하다. 겨울이면 지붕 꼭대기보다 높게 쌓이는 눈과 사나운 야생 곰이나 동물이 출몰하는 곳에서 결사적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삶의 지혜를 터득해 만든 집인 듯하다. 그러나 그 좁은 공간에서 온 가족이 함께 생활하면서 과연 부부 생활을 어떻게 했는지 자꾸만 의문이 든다.

견학이 끝난 뒤 원주민들의 생활상을 담은 영화를 한편 보았다. 그들의 생업인 사냥, 바다에서의 외로운 싸움. 시베리아 벌판보다 더 혹독한 눈 속에서 절망하지 않고 헤쳐나오는 강력한 생활력, 참으로 가슴에 잔잔한 파도를 일으키게 하는 한편의 드라마다.

그들의 옛 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또한 카누와 카약이다. 주로 튤립나무(tulip), 참나무(oak), 느름나무(elm) 그리고 밤나무(chestnut) 등을 다양하게 사용했다. 쇠로 만든 연장 하나 없이 오직 나무칼과 날카로운 조개껍질을 이용해 그것들을 만들었다 하니 카누 하나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그들의 노력이 필요했을까. 그것을 만들기 위해 쏟은 인력과 눈물 나게 섬세한 손놀림을 보며 그것을 다듬는 그 손길에서 장인의 긍지를 느끼게 한다.

영화를 보고 넓은 홀로 나오자 그들의 노래와 댄스가 시작된다. 노래는 인디언들의 그것과 흡사해 왼쪽 다리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흥겹게 북을 치고 그들 특유의 괴성을 지르면서 뱅뱅 돈다. 원주민들의 축제에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되는 북은 무스 가죽이다. 한쪽만 빳빳하게 잡아당겨 만든 이 북이 한국의 장구처럼 대단한 소리를 낸다.

워낙 긴 겨울을 나는 원주민들의 운동도 대체적으로 심플한 것들이다. 그들이 가장 즐기는 게임은 ‘One Foot High Kick’과 ‘Kneel Jump’이다.

한발 하이 킥은 여자는 54인치에서 남자는 72인치에서 시작해 3번 찰 수 있는데, 한 번에 4인치씩 높여준다. 최소한 발 하나가 그 목표물을 차고 내려올 때 절대적으로 밸런스를 유지해야 한다. 가장 높이 차는 사람이 승자다.

닐 점프는 선이 그어진 곳에서 무릎을 꿇은 자세로 개구리처럼 뛰어올라 매달아 놓은 높이만큼 점프한다. 내려올 때 발이나 손을 움직이지 않고 밸런스를 유지해야 한다. 이것도 세 번을 계속 높여서 가장 높이 점프한 사람이 승자다. 이 두 가지 게임은 그들이 사냥을 할 때 빠른 동작으로 움직이는 연습, 또 바다나 강 위에 떠 있는 얼음을 재빠르게 딛고 건너 뛸 수 있는 훈련이 되기도 한다.

돌아오는 길에 한국식당에 들렀다. 우리가 숙박하고 있는 호텔에서 오가는 길에 발견한 이 한국식당은 미국식 패스트푸드 식당이다. 한국인이 이 식당을 인수하면서 다섯 가지 한국 메뉴를 첨가했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불고기, 갈비탕, 그리고 매운탕이 있다.

이 식당의 주인 아주머니는 입에 지퍼를 채운 것 같다. 말을 잃어버린 것인지 만사가 귀찮아서 일까. 결코 눈 한번 깜빡 않고 쳐다보기만 한다. 나는 멋쩍은 웃음을 살며시 날렸다. 아무리 서글픈 인생이라도 때론 헤픈 미소라도 흘리고 가는 것이 다문 입보다는 낫지 않을까. 그나마 머나먼 곳에서 서로 얼굴을 보면…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전통무용 공연. 아메리칸 인디언의 율동과 비슷하지만, 강인한 생명력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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