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작지만 땅은 가장 비옥
튜니시아의 라 구레테 (La Goulette) 항구에 13일 오전 7시반에 도착 했다. 수도인 튜니스 (Tunis)에서 불과 7마일 떨어져 있다. 낮온도도 72F 밖에 안되고 아침 6시 25분에 뜬 해는 맑았다. 배에서 나가기 전에 여권과 입국신고서를 지참하란다. 보통 이슬람 국가에 입국할 때, 또 미국 국적의 배에 다시 돌아 올 때 이런 것이 필요하다. 오후4시까지 배로 돌아와야 하며 둘이서는 너무 떨어진 곳으로는 가지 말라는 경고도 있었다. 배에서 8시경에 내리니 수십대의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으나 우리는 단체로 가지 않고 둘이서 다니기로 한지라 택시 있는 쪽으로 갔다. 7,8명이 택시운전수와 흥정을 하고 있었고, 우리는 제일 순할 것 같은 8인승 택시 운전수와 7시간, 5군데의 여정을 주고 120유로로 대절했고 10분안에 8명을 모을 수 있었다.
1인당 15유로이고 이는 배에서 파는 같은 여정의 120달러보다 훨씬 싸며 카펫과 주얼리 공장에서 한 시간을 보낼 필요도 없다. 택시는 뉴올린스에 있는 폰트차트레인 바다호수 위를 가는 코스웨이같은, 거리는 짧으나 튜니스 바다호수 위의 튜니스로 가는 코스웨이는 넓고 똑 발랐다. 이 운전수는 영어는 몰라도 불어는 잘하고 일행 중 불어를 하는 뉴욕에서 온 부인이 있어 다행이었다.
북 아프리카에서는 제일 작은 나라지만 해안선도 길고 남쪽의 사하라 사막을 뺀 북쪽의 땅은 비옥하단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샘이 솟고 종려나무의 군락지도 되는 사하라에서는 유명한 오아시스도 있다고 들었다.
역사와 문명이 남 유럽 어느 국가와도 견줄 수 있는 나라여서인지 아랍국가들 중 또 아프리카 국가들 중 여러모로 으뜸가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수니파의 이슬람이 98% 이상이라지만 종교의 자유도 있고, 여성들이 히잡을 입고 공공장소에 나오는 것을 제재하는 몇 안 되는 무슬림국가중 하나다. 불란서와 이태리인들 또 유대인도 있기에 기독교와 유대교의 활동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리비
아 (Libya)에서 얼마 안 떨어진 쯔바 (Djerba)라는 반도에는 2,500년 전에 형성된 유대인 동네가 있고 여기에는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유대 교당이 남아 있어 유대인의 으뜸가는 순례지라고 했다. 연꽃과 열매를 먹고 태평으로 살아간다는 희랍신화의 발원지가 여기란다.
튜니스의 역사도 지중해의 어느 지방 못지않게 복잡하다. 지금의 시리아와 레바논 지방의 페니키안들과 가나안인 (Canaanites)들이 BCE 10세기에 이곳으로 와 다음 200년간 도시를 건설 했고 시칠리에 있던 희랍 왕국이 BCE 5세기까지 이를 통치했으나, 아랍족의 카르타고 왕국에 망했다. 이 왕국은 BCE 2세기에 로마제국과의 3차에 걸친 100년간 치열한 포에니 (Punic)전쟁에서 졌
고 로마군은 이 지방을 완전히 폐허로 만들었다. 근 600년을 로마왕국의 지배 속에서 다시 이룩한 문명 문화가 CE 5세기에는 저 북쪽 독일 동부에 살던 반달족에 의해 파괴 되고 약탈도 되었다. 오직 했으면 밴달이라는 말이 생겼을까.
지중해 연안의 파괴에는 이동하던 게르만 (Germanic)족들이 항상 앞장을 섰고 이들은 점령지에서 서서히 동화되는 과정을 거쳐 고딕체 이외는 이렇다 할 문화유산도 남긴 게 별로 없다. 6세기는 비잔틴국, 다음 5세기간은 북 아프리카의 여러 아랍 무슬림부족, 12세기는 시칠리의 노르만 (Normans)국, 다음 4세기동안은 해적질을 잘하던 브브 (Berber)족의 하프시드 (Hafsid)회교
왕국에 속했다.
17세기에는 스페인국에 빼앗긴 해변을 오토만 제국의 도움으로 되찾고 다시 베이스 (Beys)라는 회교왕국으로 남아 있었다. 제국주의의 희생물로 1880년부터 약 75년간 불란서의 속국이든중 1942년 미국과 독일의 격전이 있었고 1956년에 결국 독립하여 지금은 대통령제의 공화국으로 있다. 독재니 인권이니 반정부 데모니 탄압이니 혁명운동이니 하는 소리가 항상 있다고 하니 1960년대 중반까지 한국에서 살다 온 나는 이게 무슨 소리인지 잘 안다.호수를 지나온 길은 정부청사와 불란서식 육중한 건물들이 있는 대로로 변하고 택시는 이 보르
구이바 (Bourguiba)라는 대로에 있는 디폴 (de Paul)성당 앞에 섰다. 한시간 15분을 주며 메디나 (Medina)라고 불리는 지역 내에 있는 이 성당, 또 지토우나 (Zitouna)회교사원과 아랍식 시장 수크 (Souks)를 둘러보고 오란다.
시장은 미로같이 엉켜있고 좁은 통로는 콘크리트 지붕으로 덮혀 있어 어둠침침했다. 다루는 품목은 다양했고 작은 상점들은 파는 품목대로 모여 있어서인지 호객행위는 많지 않았다. 시장상인들이 친절한 것 같지는 않으나 눈이 마주치면 굿모닝이나 본주라고 했다. 샌달 위로 세프사리스 (Sefsaris)를 입은 몸매 좋은 여인이 몇 방울의 향수를 옷과 살에 ane여주어 감지덕지 하며 1달러를 주었다. 주석이나 구리접시에 그림이나 이름을 새겨주는 것이 이곳에서는 유행인 듯 하여 부르는 값의 반으로 이름도 적어 넣고 기념품 하나를 샀다. 이 좁은 통로에서도 담배통 (Shisha)의 한 호스에 빨대 두개를 붙이고는 젊은 녀석 둘이서 굴뚝 같이 높게 선 코로 사과향의 연기를 피우고 있었다.
북 아프리카에서는 메카 다음의 성지는 튜니스로 친다. 이 튜니스의 지토우나 대사원은 매우 성스러운 곳이며 그들의 유일신 알라 (Allah)의 성자 모하메드 (Muhammad)가 멀리 떨어져 있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돌아간 지 불과 200년도 안된 9세기 초에 세운 사원이다. 메카에 못가는 북 아프리카의 이슬람 신도들이 순례하는 곳이기도 하다. 시장의 뒤를 빠져나오니 이 사원이 있었다. 모자도 벗고 살금살금 발을 디디며 나무대문을 지나 경내로 갔다.
수백 개의 많은 아치형 기둥들과 제일 오래되고 높이 서고 경이롭다는 탑 (Minaret)의 건물이었다. 이 사원의 기도실에는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다. 해 뜰 때와 질 때는 기도의 동참을 외치는 구성진 목소리가 이 기도실에서 나와 시 전체에 퍼진다는데 듣지 못해 섭섭하다. 이슬람의 교리가 바로 생활의 법이고 규범이라 다 지키고 살려면 힘들 터인데도 불평이 없는 것을 보면 다 성자가 될 수 밖에 없겠네.
카르타고 왕국의 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