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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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칼럼/ 호미, 혹은 가래

2010-09-1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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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이주 원장/베이사이드 이튼치과

정선생(35, 가명)이 내원한 이유는 갑자기 부어 오른 어금니로 인한 통증을 참지 못해서 였다. 수년전에 작은 필링이 빠졌지만, 음식이 조금 끼는 것 외에는 특별히 불편하지 않아서 방치를 했고, 가끔 아프다 말다 했지만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급기야 참을 수 없는 통증으로 병원을 찾게 되었다.

진단 결과는 충치로 인한 신경손상과 감염, 그리고 신경감염으로 유발된 치조골 손상과 감염 이었다. 다시 말해, 썩은 치아로 뿌리의 신경이 죽었고, 죽은 신경 때문에 치아를 지지하고 있던 뼈조직까지 녹아버려 더이상 치아를 살릴 수 없는 상태에 이른 것이다. 마치 논바닥에 막 심어놓은 벼처럼 치아가 움직이는 상태였기 때문에 발치를 권고 하였다. 정선생님은 이미 각오를 한 듯이 권고를 받아 들였지만, 다시 한번 가능성을 되물었다. 사연인 즉슨, 얼마후에 라스베가스에서 개최되는 중요한 트레이드 쇼에 참가하여야 하는데, 쇼가 끝나
고 나서 발치를 하면 안되겠냐는 것이었다.


모든 치료에는 적절한 치료 시기가 있다. 정선생이 수년전 필링이 빠졌을 때 내원을 했었으면, 간단한 충치치료로 끝났을 것이고, 비단 수개월 전에만 왔었어도, 신경치료와 크라운으로 해결 되었을 것이다. 뼈조직에 감염이 있어도, 신경치료를 성공적으로 받게 되면, 뼈조직의 감염을 막을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뼈조직의 복원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선생의 경우, 발치를 하지 않고 지내다 보면, 다시 붇거나 통증이 생겨 일하는 도중에 응급상황이 될 수도 있음을 주지 시켜드렸다.

결국, 정선생은 항생제를 투여 받고 부기가 가라앉은 일주일 뒤 다시 내원하여 발치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라스베가스로 떠나기 하루 전날에 실밥을 제거한 뒤 공항으로 향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앞니가 아닌, 어금니였기 때문에 아무도 치아가 손실된 것을 알 수는 없을 것이란 걸 위안으로 삼고 떠났다.
정선생을 다시 보게 된 것은 몇달 뒤 정기 점검때였다. 불경기 임에도 라스베가스 트레이드 쇼의 성과도 좋았다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비록 치아 하나를 잃었지만, 그 비싼 댓가로 좋은 교훈을 얻었다고 말하며, 앞으로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으러 오겠다며 스스로 다짐도 하셨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우는 사례였다. 호미로 막을 수 있을 때 막아야 한다. 가래로 막게 될 때까지 방치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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