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폐백과 이바지 음식

2010-05-1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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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 축복하는 ‘친정어머니의 정성’

5월은 참 좋다. 가정의 달로 한국의 어린이날, 어버이날, 미국의 마더스 데이가 있고, 결혼 시즌이니만큼 아름다운 커플들이 하나로 맺어져 소중한 가정을 만드는 첫 걸음을 뗀다. 정신없이 바쁜 현대인들이지만 결혼식 준비는 프로같이 철저하게 작은 것 하나하나 정성을 기울여 직접 준비하기도 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도 하여 눈부시게 근사한 결혼식을 만들어 낸다. 일생일대의 가장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준비하고 생각해야 할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닌데, 세심한 정성을 기울여 ‘식’을 준비하는 과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을 것이다.

요즘은 결혼 하면 생각나는 것이 멋진 웨딩 케익과 근사한 음식 정도지만, 한국 고유의 혼례는 지금의 예식과는 다른 멋과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남녀가 만나 부부가 되는 혼례는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정을 이루고 자손을 번성시키는 출발점인 인륜지대사로서 대례라고 불리는 중요한 행사였다. 예로부터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엄격한 형식이나 격식 또는 호화로운 혼수가 아닌 ‘마음가짐’이었다.

반가의 혼례는 사치보다는 검소함을 위주로 자신의 예를 다하는 것이었으며 혼례 자체가 지나치면 손복 한다는 생각에서 혼수를 과하거나 지나치지 않도록 마련하였고 으뜸 가는 혼수는 다름 아닌 혼인 당사자 서로의 마음이라고 했다.


조선 후기 서울 반가의 혼례는 예의 정신을 근본으로 삼아 혼인 때 재물을 논하고 혼수를 사치스럽게 하는 것을 매우 부끄럽게 여겨 경계하였고, 오히려 부부의 화합과 자녀출산, 예의와 사랑과 존경을 갖춘 마음 자세 그리고 가정의 영원한 복을 기원했던 모든 이들의 뜻이 모여 혼례의 외면적 형식과 내면적 실제의 일치에서 그의 의를 찾을 수 있다고 하니, 고급스럽고 값비싼 물건에 의미를 두지 않고 마음가짐과 정신의 미덕을 중히 여겼던 선조들의 지혜로움을 볼 수 있었다.

혼담이 오가는 것에서부터, 시집간 딸이 친정에 가서 어버이를 뵙는 근친까지 다양한 행사가 있었는데 혼례에 쓰인 음식 하나하나에도 감사와 정성을 담은 의미에 맞게 차려졌다. 신랑 신부의 앞길을 축복하고 하객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정성이 담긴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우리의 아름다운 풍속이다.

다양하고 재미있는 우리의 혼례음식들인 봉치떡, 폐백, 이바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호원당 LA지점을 찾아 정영주 미주 지사장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호원당은 양주 조씨 종가의 후손인 조자호씨가 전통음식 보급을 위해 1953년 설립한 후 3대째 가업을 이어 내려오는 전통병과점. 조자호 할머니는 고조부가 영의정을 지냈고 순종의 부인인 순정효황후 윤씨와는 이종사촌 간인 명문가에서 자라며 1년 내내 봉제사와 귀빈 접대가 끊이지 않았던 환경 속에서 자연스레 음식을 배우게 되었으며 ‘조선 요리법’이라는 책을 써내 사라져 가는 한국 전통음식의 맥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손녀인 정영주 지사장은 말했다.

아름답고 멋스러운 우리의 혼례문화의 유례와 세심한 마음 씀씀이를 알고 나면 고유한 우리의 전통문화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바쁜 현대사회에 맞추어 간소화 할 것은 하더라도 기본 정신과 마음은 변함이 없어야겠다.


신부가 시댁 어른들께 드리는 폐백은 대추, 육포, 마른 안주를 정성들여 준비했다.

폐백을 싼
아름다운 보자기, 봉이라고 쓴 한지로 고리를 만들어 묶었다.


호원당이 말하는 ‘전통 혼례음식’

■폐백 음식


대추·육포·편포
풍성한 구절판
혼례 후 시댁 인사


혼례 후에 갖는 폐백은 역사가 꽤 오래되었다. 중국에서 전해진 풍습이었는데 원래는 딸을 시집 보내주어 고맙다는 뜻으로 신랑 집이 신부 집에 제공하는 선물이었다고 하는데 조선시대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거행됐다. 혼례식으로 부부가 되고 나서 신랑 신부는 하루 또는 3일이 지난 후 신랑 집으로 가는데 신부는 시가에 오자마자 신랑의 친척들에게 인사를 올리는 ‘현구고례’를 한다. 현구고례란 신부가 신부 집에서 장만해온 음식들을 간단하게 차려놓고 시부모부터 시조부모, 백숙부모, 고모 내외에게 절을 올려 인사를 하는 것인데 이때 차려진 음식을 ‘폐백’이라고 부른다.

현대에 와서는 신랑 신부가 처가에서 3일이나 머무를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결혼식 직후 바로 폐백을 드리는 것이 요즘의 관례다.


<대추 폐백과 고기 폐백>

폐백음식은 원래 간단했다. 대추 폐백, 고기 폐백이라 부르는데 대추를 중심으로 여름에는 육포, 겨울에는 편포 정도였으며 술은 가지고 가지 않았다. 편포란 고기 다진 것에 양념을 하여 보내어 시댁에서 현구고례 후 ‘입맷상’이라고 하는 국수장국을 끓여 먹을 때 고명으로 사용하였는데, 결혼 하라는 뜻으로 국수 언제 먹느냐는 인사가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음양의 조화를 중시 여겼으므로 대추는 양을 상징하며 오래 사시라는 뜻으로 시아버지께 드렸다. 육포나 편포는 음을 상징하며 받들어 공경한다는 의미로 시어머니께 드렸고, 동시에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부족함을 감싸준다는 뜻으로 육포를 어루만지는 풍습이 있었다.

재미있는 것이 양은 숫자 1을 상징하기 때문에 많은 양의 대추를 실에 꿰어 쌓아 올려서 한 덩어리로 만들었고, 음은 숫자 2를 상징하므로 반드시 육포를 두 덩어리로 만들어 드렸다고 한다. 외에도 구절판에 마른 안주를 풍성하게 담아 주안상에 놓았다. 폐백을 감싼 보자기도 아름다운데 흥미로웠던 것은 보자기를 묶은 한지였다. 한지로 고리를 만들어 끼웠는데 고리를 위로 빼내면 묶여있던 보자기가 꽃잎 벌어지듯 스르르 펼쳐지도록 하여 시댁 어른들 앞에서 당황하지 않고 잘 풀어지게 작은 것에도 세심하게 신경 쓴 것을 볼 수 있다.


■이바지 음식

떡·한과·고기 등
맛·모양·색감에
친정의 가풍 담아


혼인한 신랑 신부가 신부 집에 묵었다가 시댁 사당에 고하기 위해 갈 때 친정어머니가 손수 준비해 준 음식을 가지고 갔는데 이것을 이바지라고 부른다. 이바지란 말의 어원은 ‘정성 들여 음식을 준비하다’라는 의미의 ‘이바지하다’에서 온 것으로 정성스럽게 음식을 준비하는 것처럼 시부모를 잘 모시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시댁에 딸을 보내며 시댁 식구들과 화복하고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기 바라는 친정어머니의 마음이 담겨 있으므로 시댁에서도 그 정성을 헤아리며 얼마간의 음식을 답례로 보내는 것을 예의로 여겨졌다. 음식의 맛 못지않게 모양과 색감에도 특별한 신경을 써 그 동안 가정교육을 시켜온 친정어머니의 수준과 안목을 시댁에 알리며 신부 친정 집안의 가풍을 간접적으로 보여 주는 기회로도 사용되었다.

요즘은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신랑 신부가 시댁에 처음으로 인사하러 갈 때 가져가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음식의 가짓수나 화려함보다는 사돈 간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인사이므로 정성 어린 마음이 더욱 중요하다. 종류로는 기본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으나 12가지 양념과 떡, 과일, 한과, 고기 등의 음식을 하는 게 보통이다.

밑반찬은 다음날 아침 신부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손쉽게 상을 차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의미에서 넣었다. 이바지 음식을 준비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은 날 것을 그대로 보내지 않는다는 것. 간혹 갈비 등을 생 것으로 보내는 일이 있는데 이것은 예의에 어긋나며, 음식을 담는 그릇은 계절에 따라 신선도를 고려해 선택하는데 대개 종이 함이나 대바구니, 목기를 이용한다.



이바지 한과세트. 친정 어머니의 정상과 마음이 담긴 음식.

혼례 후 신랑과 신부에게 차려 주었던 큰 상.


●함 들어올 때 준비하는 봉치떡

신랑 집에서 신부 집에 함을 보내는 납폐의식은 혼인 전날이나 혼례일 며칠 전에 행해지는데 이 때 신부 집에서 함을 받기 위해 준비하는 음식으로 봉치떡이 있다. 봉치떡은 찹쌀 세 되와 팥 한 되와 찹쌀 시루 두 켜만을 시루에 앉힌다. 이때 대추 일곱 개를 윗 켜 중간에 방사형으로 둥글게 모아 놓고 함이 들어올 시간에 맞추어 준비한다. 봉치떡을 찰진 찹쌀로 하는 것은 부부 금실이 좋으라는 의미요, 붉은 팥고물은 액운을 막기 위함이며, 대추는 아들을 기원하는 뜻이다. 쌀의 양이 3되인 것은 3이라는 숫자에 많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떡을 2켜로 제한한 것은 부부 한 쌍을 뜻하고 대추 7개는 7형제의 길함과 다산을 의미한다.


함이 들어오는 날 신부집에서 준비하는 봉치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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