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 영미 이야기 <중>

2010-04-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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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욱이 이야기

“왜요? 선생님? 저 지금이 좋은데요…” “사실은 우리반 애들이 아무도 영미하고 짝을 않하려고 해서. 근데 넌 처음 짝이어서 친하게 지냈잖아.” “선생님 저 영미하고 다니면 사실 많이 불편해요. 죄송해요…”

선생님과의 상담이 있은 후 여름방학이 되었고, 다시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학교에 늦지 않으려 집을 나서는데 ‘영미’가 집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영미야, 너 누구 기다리니?” 속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영미와 보조를 맞춰 학교에 가면 첫날부터 지각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난 애써 바쁜 척 친구를 외면하게 되었다. “영미야, 학교에서 만나자, 빨리와~”

영미를 놔두고 학교를 가는데 체한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김민아! 참 나쁜 아이구나! 인간성 제로네…’ 학교에 도착을 했는데도 자꾸 두리번거리게 되고 영미가 교실문을 언제 열고 들어오나 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1교시가 시작하려는데 교실 뒷문이 ‘드르륵’ 열리고 영미가 들어왔다. 얼굴이 땀범벅을 해서 헥헥거리고 ‘철퍼덕 철퍼덕’ 소리를 내고 들어와 자리에 앉는 영미를 1교시 담당 수학선생님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늦었으면서 자리에 앉기는 어딜 앉아? 뒤에 가서 손들고 있어!”


난 마치 나의 잘못 때문에 친구가 큰일을 당한 것처럼 안절부절 진땀이 나기 시작했다.

1교시 내내 영미는 교실 뒤쪽에서 손을 들고 있었다. 그 시간 나도 벌 서는 기분으로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빨리 1교시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1교시가 끝이 나고 영미가 자리에 들어와 앉았다. 영미는 입을 꾹 다문 채 가방에서 책을 꺼내는데 차마 옆에 가서 말을 걸 수가 없다. 하루 종일 영미의 눈치를 보며 하루가 지났다. 하교를 하는데 학교 앞에서 영미를 기다려도 나오질 않는다. 집에 같이 걸어가면서 마음을 풀어주려고 했는데 한 시간 넘게 기다렸지만 영미는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혹시 집 앞에 영미가 오지 않을까 기다렸지만 영미는 오지 않았다. 학교에도 오지 않았다. 며칠 결석을 하더니 전학을 했다고 선생님이 조회시간에 알려주었다.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죄책감이 들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후에 몇 년 동안 영미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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