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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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영 목사의 몽골체험기 (28) 역전의 용사 징기스칸

2010-01-2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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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독살한 부족 평정

▶ 몽골 통일 이뤄

징기스칸은 1162년에 양아버지 예수게이와 친어머니 후엘룬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명은 테무진(Temujin). 징기스칸 칭호는 1189년에 몽골의 부족연합회의에서 추대 되면서 부르게 되었으며 1206년 오논 강변에서 열린 부족총회에서 칸(Khaan=왕)이 되었다.

한편 수정같이 맑고 깨끗한 물이 바이칼 호로 흘러드는 셀렝게 강 일대에 자리 잡은 메르키드 부족장의 아우인 예케 칠레두가 그의 아내를 약탈당한다. 그녀를 약탈해간 자가 바로 칭기즈칸의 호적상의 아버지 예수게이이고, 약탈당한 여인은 테무진의 어머니 후엘룬이다. 그리고 그 얼마 뒤 징기스칸은 그의 아내를 다시 그 부족에게 약탈당한다. 태무진의 생부는 처가에서 데릴사위로 있다가 풍습을 따라 임신한 아내 후엘룬의 출산을 위해 고향으로 귀가하던 길 오논 강변에서 그의 아내를 빼앗긴 것이다. 이 때문에 테무진의 생부는 예케 칠류두라는 것이 비공식적으로는 공인된다. 이는 다름 아닌 징기스칸이 몽골 혈통이 아니고 메르키드 핏줄이라는 얘기다. 그러면 메르키드는 어느 부족인가?
몽골학자 아르다잡 교수는 메르키드는 발해의 말갈(靺鞨)이라고 고증한다. 그렇다면 칭기즈칸의 혈통은 발해 유민이라는 말이다. 발해는 패망한 고구려의 유민이 세운 나라가 아닌가?

징기스칸이 몽골을 통일하기 전까지 몽골의 드넓은 고원은 다섯 개의 부족이 서로 물고 물리는 내전 상황이었다. 당시 태무진이 가장 싫어했던 부족은 자신을 이 땅에 태어나게 한 메르키드 부족이다. 태무진의 어머니는 고울리족 출신인데 이는 고려족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당시의 몽골 고원에서는 아내를 빼앗기면 반드시 보복하는 것이 관행이었다.그 후 예수게이는 독살을 당하고 테무진을 비롯한 유족들은 자기 부족으로부터도 버림을 받은 채 힘겨운 생존 투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적들이 침범한다. 남자들은 몸을 숨길 수 있었지만, 여자들은 무사하지 못했다. 이 때 태무진의 첫사랑 아내 버르테는 포로로 잡혀가서 적장의 아내가 된다. 그의 아내를 납치했던 사람은 그의 어머니 허엘룬을 징기스칸의 양부 예수게이에게 빼앗긴 칠레두였다.


1202년 가을, 헤룰렌강 북쪽에 위치한 쿠이텐에서 징기스칸 연합군과 메르키트 연합군이 한 판 붙게 된다. 마흔이 된 징기스칸은 이미 그 바닥 초원에서는 산천초목도 벌벌 떨게 하는 싸움판의 독보적인 존재로 성장했다. 그 즈음 징기스칸은 그의 숙명적 라이벌인 초원의 대적 케레이트 부족의 리더 옹칸과 피할 수 없는 전투를 하게 되는데 옹칸은 메르키드 부족과 자모카라
는 징기스칸의 또 다른 친구 라이벌을 끌어들여 대 연합전선을 구축하여 징기스칸을 제거하려고 했지만 결과는 징기스칸의 완벽한 승전으로 끝난다. 여느 전쟁이 그랬듯이 남겨진 메르키드족의 여자들과 재산과 가축들은 승자들의 몫이 된다. 징기스칸은 적장의 아들 우순의 딸을 아내로 맞이한다. 그녀가 바로 징기스칸의 두 번째 부인이자 그가 가장 사랑했던 여인 훌란이다. 징기스칸은 그 후로도 여러 여자들을 아내나 첩으로 두었지만 훌란을 가장 사랑했다. 지금도 내몽골에 있는 징기스칸의 가묘(假墓)에는 정부인 버르테와 애첩 훌란의 무덤이 그의 좌우 옆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자고나면 적과 동지가 바뀌는 어지러운 세상, 자기 아버지를 죽인 사람의 아내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자신의 남편을 죽인 원수와 남은 생을 함께 한다는 것이 치욕스러운 일이며 배은망덕의 소치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차라리 자결을 하지...하지만 그것은 우리 한국같은 농경사회 정착민 후예들의 사고방식일 뿐이다.패퇴한 부족은 이름조차 남지 않는다. 모든 문화도 사라지고 명예도 사라진다. 하지만 전투병이 아니었던 여자들은 아직 남아있다. 그녀들은 새로운 삶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남편은 그런 의
미만 있을 뿐이다. 징기스칸의 애첩 훌란 공주는 몽골사상 전설적인 미인으로 알려지고 있어 원말의 기황후와 함께 한국 여인은 슬기롭고 아름답다는 인상을 몽골인들에게 깊이 각인시킨 솔롱고스, 즉 고려 여인이다. 당시의 솔롱고스는 발해 유민국이었고 발해는 외교문서 상에 고려로도 자칭했다. (참고로 지금의 몽골 남정네들의 최대의 소망은(?) 한국의 여인에게 장가를 드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 드라마의 영향이기도 하겠지만 그들은 역사적으로 한국의 여인들을 그렇게 흠모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임자가 없는 여인들은 몽골을 방문하라. 잘 생긴 몽골의 호남들이 쌍수로 환영할 것이다. 그리고 골라잡아라. 더군다나 재미 한국여인이라면 환상의 파트너가 될 것이다. 한국에서 일하는 몽골의 남정네들이 그렇게 열심히 일하여 번 돈을 어찌 쓰는지 아는가? 하룻밤
사랑을 위하여 쓰는 것이다. 그들의 평생의 소원은 그렇게 해서라도 솔롱거스의 여인 고려의 여자를 품어 보는 것이다. 훌란 공주는 17세기 몽골 문헌인 ‘몽골원류’에 솔롱고스의 공주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당시의 솔롱고스가 발해이고 메르키드가 솔롱고스로 기록됐다면, 메르키드는 말갈일 수 있고 메르키드의 공주 훌란은 솔롱고스 공주가 된다. 훌란 공주의 아버지 다이르 우순 칸을 보카 차간 한이라고 적고 있는데 이는 발해(渤海)의 백왕(白王)이라는 말이다.

몽골인에게 메르키드-말갈은 활을 쏘아 사냥하며 사는 숲속의 사람들이다. 메르키드는 메르겐(마립간 麻立干: Mergen)이라는 이름난 활잡이(궁수弓手)의 복수형에서 유래된 부족명으로 이족(夷族 활을 잘 쏘는 민족)이랄 수도 있다. 따라서 메르키드는 흥안령 북부나 초원과 산악이 혼재하는 셀렝게 강 일대에서 연해주에 이르는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발해와 역사적으로 밀착 관계를 맺어왔을 수 있다.징기스칸은 1203년에 아버지를 죽인 타타르족과 헤레이트족을 평정하여 드디어 몽골 대초원을 통일한다. 징기스칸은 기존의 부족 공동체를 해체하고 천호(千戶)라고 하는 군사조직을 만들어 전 부족을 95개의 유목군단 부대로 편성하였다. 그야말로 전국민을 전투 요원화하였고 모든 백성을 무장화 시킨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1215년은 베이징을 침공하였고 1219~1223년 까지는 중앙아시아와 러시아를 정복하여 세계 최강의 몽골제국을 이루었다. 이렇게 정복한 땅들은 아들에게 분할 해주고 칸국을 건설하도록 하였다.

징기스칸이 세계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뿌린 씨앗이 무려 1,600여 만 명이나 되었으며 그 후예들은 오늘날 지구촌 곳곳에 산재하여 살고 있다. 특히 나라 이름의 끝에 ~~탄 자가 들어가는 나라들은 거의 다 징기스칸의 직계 혈통이 세운나라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세계를 정복한 칭기스칸의 직계 혈통들이 국내 문제로 귀국을 명받았을 때 들어 가봤자 좋은 일이 없을 것을 예상하고 그냥 주저앉아 나라를 만든 것이다. 그 “탄”자가 몽골어로 땅이라는 말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확인은 하지 못했다. 징기스칸 시대에는 고려에서 13세~15세 소녀들을 매년 400~500명씩 40 여 년간 2만여 명을 몽골로 데려가서 왕족 또는 귀족들과 결혼시켜 자손들을 번창하게 했다. 그러니 몽골에서는 우리 한국을 사돈의 나라라며 좋아하고 가까이 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몽골족은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더욱 존경하고 섬기는 가족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칭기스칸의 어머니 역시 코리(구려=고구려)족 출신으로 그를 잘 키워서 세계를 정복하고 경영한 위대한 테무진을 낳아서 양육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징기스칸이 동이족이었고 그의 어머니와 아내가 모두 동이족이다. 이는 세계를 정복한 사람이 바로 한국인이라는 말이다. 얼마나 위대한 우리의 핏줄들인가! 환단고기(桓檀古記)의 단군세기(檀君世紀)편에 의하면 고조선의 단군4세(BC2137년) 오사구(烏斯丘) 천황이 동생 오사달(烏斯達)을 몽골 왕으로 책봉하였으며, 그 오사달이 사실상 몽골족의 국조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보다 40년 전(B.C. 2177년) 고조선 3세 가륵 천황시대의 열양욕살이 몽골 흉노족의 시조이다. 징기스칸이 고을리(고구려)의 외손(外孫)이라는 사실이 몽골비사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징기스칸은 발해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역사학자들은 유추(類推)하고 있다. 이와 같이 몽골족(흉노족)은 고조선 단군천황(檀君天皇)의 한 혈통자손으로 비롯되었으나 수천 년이 지나온 오늘날 현대의 한국인들은 상고사에 대한 지식이 없으므로 다른 혈통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으니 조상의 역사를 모르는 자야말로 금수(禽獸)가 아니고 무엇이랴. 우리의 영웅은 1227년 8월 18일 낙마하여 백사에게 물렸다. 이 때 그분의 연세는 65세. 그 후 800년, 1995년 Washington Post는 지난 1천년 동안 가장 위대한 인물로 징기스칸을 선정하였다. (NJ Fort Lee 한사랑교회 담임목사 moneun@gmail.com)HSPACE=5
바이칼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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