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고 무당이 굿 하는 장면
몽골(蒙骨)이라는 국명은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高朱蒙)으로부터 몽(蒙)자를 물려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고주몽의 뼈라는 뜻의 몽골로 부르게 되었을 것이다. 몽골의 땅이 고구려의 영토였음이 고고학 발굴에 의하여 밝혀지고 있으므로 그렇게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몽골의 정신세계를 휘어잡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바로 무당과 점쟁이의 요설(饒舌)이다. 그리고 그 뒤에 라마 불교가 자리하고 있다. 그렇게 단정을 짓는 이유는 이렇다. 내가 재직하던 대학의 학생 중에 손가락이 6개인 학생이 있었다. 마침 연세친선병원의 닥터가 무료로 수술을 해주겠노라고 했다. 그랬더니 스님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한다는 소리가 복손가락이기 때문에 절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또 그 대학총장 부인의 얼굴에 큰 점이 있어서 공짜로 빼주겠다고 했더니 같은 소리를 하는 것이다. 복점이라는 것이다. 역시 스님의 명령이다.
목사가 되겠다고 했던 중학교 친구 중에 점쟁이가 된 놈이 있다. 그는 그 바닥에서는 제법 영험이 있다는 평판을 받아서 많은 단골들을 확보하고 있고 그래서 쏠쏠한 재미를 보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는 그의 비즈니스를 유지하기 위하여 무진장 노력을 한다. 국내외 정세는 물론이고 경제사정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으며 게다가 심리학까지 두루 섭렵하여 제법 도사 티를 내고 있는데 내 앞에서는 솔직하게 꼬리를 내린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점괘가 잘 안나오는 고
객에게는 교회에 나가면 된다고 훈수를 둔다며 자기를 나름대로 인정하여 달라는 측은한 눈빛을 보이기도 한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어서 어떤 신적인 존재에게 의존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과학의 발달과 지식의 증가와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아니 그 반대 일수도 있다. 일본의 과학 수준은 세계 최고의 수준이지만 그들은 여전히 800만개의 허섭쓰레기 같은 귀신을 지극정성으로 섬기고 있다.
내가 어릴 때 만해도 동네에서는 굿을 하는 집들이 꽤 있었다.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여자 무당이 밤을 새워가면서 북을 치고 꽹과리를 치면서 땀을 뻘뻘 흘리며 굿을 하는 것이다. 털을 몽땅 제거하고 깨끗하게 목욕을 시켜 잡아 놓은 돼지는 그 꼴이 되어서도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허연 뱃살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놓고 히죽이 웃으며 누워있는데 무당은 그 앞에서 알아듣지도 못할 무슨 소리를 연신 지껄이며 그렇게 신명나게 굿을 하는 것이었다. 작두를 타며 그 위에서 맨발로 춤을 추며 별 힘도 없는 신(神)과 교통하는 그녀는 어찌 보면
무섭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굿판에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인 어린 내가 가기만 하면 무당이 하얗게 질리며 굿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빨리 여기서 떠나라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나중에 안일이다. 무당은 귀신의 부하다. 요즘말로 무당은 귀신의 사역자인 셈이다. 그런데 나는 하나님을 믿는 어린이였다. 그 어린 나이에 무엇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잡신(雜神)인 무당의 신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내 앞에서는 시체 말로 쪽을 쓰지 못하는 것이다. 어린 내 안에 있는 성령(聖靈)의 능력이 무당이 뫼시고 있는 악령(惡靈)의 권세를 아주 가볍게 누르는 것이다. 영험한 무당과 점쟁이들은 안다. 진정한 예수쟁이 앞에서는 굿이 되지를 않고 점괘가 나오지 못하는 것을. 그래서 예수쟁이가 앞에 나타났는데도 굿을 열심히 하는 무당은 용한 무당이 아니고 엉터리 무당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한번은 지리산 등반을 마치고 친구 목사들과 내려오는데 때는 마침 초여름이었다. 그 날이 무슨 날인지 구비 진 계곡마다 소복을 한 무당들이 제물을 잔뜩 차려놓고 징을 치고 북을 두들기며 치성삼매에 들어간 것이었다. 나는 배도 약간 출출한데다가 장난기가 발동하여 제상에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좀 실례하려고 뒤로 살살 다가가는데 갑자기 나 있는 쪽을 향하여 몸을 돌리더니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것이다. 접근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땅의 임자가 그 무당이 아니건만 그렇게 악을 쓰며 소리를 치는 그 무녀의 인상이 하도 섬뜩하고 고약하게 생겨서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린 적이 있었다. 그것은 분명 마귀의 상이었다. 경상남도 고성군에는 유명한 사찰들인 문수암과 옥천사가 있다. 그 동네에서 목회하던 친구목사한테 들은 이야기 한토막. 워낙에 마당발인데다 호탕하고 대범한 인물인지라 군내 스님들과 다 잘 통한다. 그 친구가 스님에게서 들은 이야기라며 신기한 듯이 전하는 말인즉슨, 영발이 떨어진 무당이 영발을 보충하는 최고의 방법은 고승과 함께 하룻밤을 지내는 것이란다. 그래서 무녀들이 바리바리 뇌물을 싸들고 오는데도 제대로 된 스님들은 그런 잠자리를 거부한단다. 그런 그녀들을 진정한 스님들은 쳐다보지도 않는다는데... 과연...어디까지가 진실인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현재까지는 몽골인들의 정신세계를 주관하는 것이 바로 라마불교이고 샤마니즘(shamanism, 무당)이다. 특히 몽골무당들의 영발은 상당히 센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하지만 그 용한 무당들이 우리의 개신교 선교사님들에 의해서 무너져 내리고 회개의 운동이 일어나고 있으니....바로 흡수골 지역 무당의 두목격인 어느 용한 무당이 한 선교사에 의해서 회심을 하고 기독교로 개종한 것이다. 그들이 참 된 신을 발견하고 예배드리는 날에 몽골의 지난 영화가 다시 살아나리라. 한번은 가깝게 지내는 육군 중령이자 몽골군악대 대장의 부친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문상을 간적이 있었다. 당연히 망자를 어떻게 보내는지 그 의식을 보고 싶은 호기심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시신을 모신 아파트 방으로 안내되어 들어가니 시신의 머리맡에 잔뜩 폼을 잡고 앉은 분이 바로 스님이다. 스님은 장례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관하는 막강한 파워를 가진 존재이다. 발인
과 하관날짜를 정하고 장지를 지정한다.
장례식을 마치고 이런 저런 잡담을 나누는데 이 양반이 진지하게 묻는다. 우리 몽골의 스님들은 동네마다 있는 수많은 과부들을 관리(?)해 주어야 하고 그 일 때문에 이 동네 저 부락을 참으로 분주하게 지내는데 당신네 기독교 목사들도 그리 하느냐는 것이다. 나는 큰일 날이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솔직히 좀 부러운(?)생각도 들었던 것은 아직도 나는 속물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목욕을 좀처럼 하지 않는 시골의 그녀들을 생각하니 그런 생각이 금새 달아나고 말았
다. 왜냐하면 어느 게르에서 어떤 여자 곁에 잠시 앉아 있었는데 어찌나 냄새가 심하게 나는지 골이 아팠던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인간이 풍길 수 있는 냄새의 종류가 이렇게 다양하고 독특하다니....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에 가면 간등사라는 큰 절이 있다. 그 절 마당에 지름이 약 20센티미터 되는 커다란 깡통같은 것들이 말뚝들 위에 수십 개가 나란히 붙어 서 있는데 그 깡통을 한 바퀴 돌리면 불교의 경전을 한 번 읽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단다. 경전을 많이 돌리면 많이 읽은 것이고...그것이 또한 부처님의 음덕을 입는 길이라고 믿어서 무조건 진지하게 열심히 돌리고 도는 그들을 보면서 기독교의 기복주의자들과 무엇이 다르랴 상념에 빠진 적이 있었다.
징기스칸은 종교 문제에 있어 상당히 관대한 입장을 취했다. 그리하여 어떤 종류의 종교적 현자나 수도자라도 차별 없이 존중했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 스스로는 전통적인 무속을 신봉하여 결정적인 사건에 마주치면 영원히 푸른 하늘의 가호를 비는 의식을 행하고 무당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또한 외국의 용한 점쟁이나 점성가들의 예언이나 조언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는 거란인 야율아해나 아율초재와 같이 양의 견갑골로 점을 치는 점쟁이들을 주위에 데리고 있었으며, 원정을 떠나기 전 점을 쳐보게 하기도 했다.(이안나, 울란바타르대학교 한국학 연구소장) 징기스칸 당시 수도 하라호름에는 기독교의 한 분파인 네스트리우스교(경교, 景敎)가 상당히 활발하게 선교사업을 하여 인구의 절반이 기독교인이었다는 말을 30대에 장관을 지낸 분으로부터
직접 들었다. 무당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한국의 무당과 몽골무당과 시베리아무당은 같은 계열의 무당이다. 무당을 샤먼이라고 하는데, 샤먼은 ‘동이족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샤를 뱀을 의미하는 사(巳)로, 먼을 어머니 혹은 여인을 의미하는 모(母)로 본다. 성경은 뱀을 사탄의 상징으로 본다. 그렇다면 샤먼은 사탄을 섬기는 여인이란 말이다. 몽골사람들은 늑대를 신성시한다. 북극성이 탐랑성(貪狼星)으로 불리는 늑대별이기 때문에 늑대
를 북극성과 동일시하여 신성시하는 것이다. 탐랑성의 랑(狼)은 늑대(이리)를 의미한다. 몽골을 세운 징기스칸은 스스로를 푸른 늑대의 자손이라고 하였다. 탐랑성의 후예라는 말이다. 몽골무당은 무당토템으로 늑대를 숭상한다. 북극성을 숭상한다는 말이다. 북극성의 움직임을 포착하여 점을 친다는 말이다. 별은 하늘의 징조를 담고 있다. 그러니 동방의 박사들은 별의 움직임을 보고 따라가서 어린 예수께 경배를 한 것이다. 독자들은 이 점이 수수께끼일 것이다.
단군조선시대에 구가(狗加)로 불리던 부족이 있었다. 구가는 부족 아이콘으로 개를 썼다. 고구려시대엔 개를 신전(神殿)지기로 썼다. 늑대를 숭상하는 몽골도 그 근원을 따져 가면 단군조선의 오가에 속했던 구가에 맥이 닿는다. 구가의 후예로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구약성경 신명기는 말한다. 점쟁이나 무당이나 신접한 자를 찾아가는 자를 용납하지 말라. 샤먼은 비록 신의 영력(靈力)을 빌어서 점을 쳐주지만 그들의 신은 그들을 이용하고 나면 버린다. 무당과 점쟁이의 가정과 자손들이 잘 되는 것을 보았는가? 그런 일은 절대로 없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그의 사역자들과 백성들을 끝까지 신실하게 살펴 주신다. 할렐루야! (NJ Fort Lee 한사랑교회 담임목사 moneu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