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독립, 동이족 원주민에 또다른 비극의 시작
미국을 포함한 남북미대륙은 우리의 동이족(東夷族) 선조(先祖)들이 일찍이 들어와서 정착한 우리의 땅이다. 용맹스럽고 슬기로운 동이족은 북미 대륙을 접수한 다음 남미대륙도 차지한다. 그러니까 아직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 된지 얼마 안 된 시기였다.
동이족은 광활한 시베리아와 만주 벌판을 안마당처럼 누비고 다녔다. 사냥을 하다가 지치면 바이칼 호수에서 낚시하며 목욕하고 쉬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전진하다 보니 지금의 베링해협을 건너게 된다. 그 때까지 이 대륙은 그 누구도 발을 디딘 적이 없는 처녀지였다. 일부는 북미대륙으로 들어가서 정착을 하고 또 일부는 지구의 끝인 남미대륙까지 진출한다. 남북미 대륙은 우리의 선조들이 선점한 우리의 땅이다. 그러므로 이 땅이야 말로 우리 할아버지의 나라요 우리의 조국(祖國)이다. 우리가 이 땅의 주인의식을 가져야 하는 그 첫 번째 근거이다.
한편 좁은 땅덩어리 속에서 땅따먹기 전쟁 놀음을 계속 하고 으르렁대었던 유럽의 제국은 눈을 해외로 돌리게 된다. 마침내 그들은 싸움터를 북미대륙으로 옮긴다. 그 선두주자 격이 바로 영국과 프랑스다. 대서양연안에서 서쪽 내륙으로 거침없이 진군하던 영국은 미시시피지역을 먼저 차지하고 있던 프랑스와 일전을 벌인다. 1754년 최초의 북미대륙에서의 영-불 전쟁이 캐나다 두케스네(Duquesne)요새에서 벌어졌다. 그리고 1763년 몬트리올을 공략한 영국군이 프랑스를 대패시킴으로서 끝이 났다. 영국은 캐나다 전부와 애팔래치안 산맥에서 미시시피강에 이르는 광대한 인디안 땅을 차지한다. 북미대륙의 지배권을 놓고 벌인 한판 승부에서 영국이 승리함으로써 동이족 후예인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장래는 어두운 구름이 덥히게 된다.
프랑스와의 일전에서 대승을 거둔 영국은 전쟁에 소모된 막대한 재정을 보충하기 위하여 인디언의 땅을 팔아먹을 궁리를 한다. 한편 미국 내의 영국 식민지 시민들은 경제적인 자립을 성취하게 되자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꿈꾸기 시작한다. 자기들의 피땀어린 돈이 영국으로 지출되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영국은 식민지인들의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식민지에서의 수입을 올리기 위하여 식민지에 대한 간섭을 강화한다. 사탕조례(Sugar Act)를 실시하여 미국 내 영국주둔군의 경비를 충당하게 된다. 1765년 인지조례(Stamp Act)를 제정한다. 모든 문서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1770년 제국군의 대위 토마스가 미국인 5명을 살해했다는 보도가 되면서 식민지 사회는 분노하게 된다. 1776년 마침내 독립선언문의 기초위원회를 구성하고 토마스 제퍼슨을 위원장으로 선출한다. 이때 그의 나이 33세다. 1776년 7월 4일 미국은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포한다. 그러나 영국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른바 독립전쟁이 벌어지지만 영국군은 퇴각하고 워싱턴 장군의 승리로 끝난다. 1783년 영국과 미합중국은 평화협정을 체결한다. 미국은 5대호에서 플로리다까지, 대서양에서 미시시피까지 넓은 땅을 영토로 받게 된다. 누구의 땅을 누가 누구에게 어떻게 무슨 자격으로 넘겨주고 넘겨받게 되었나. 우리 동이족의 후손인 재미 한국인들은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위의 조약에서 원주인 인디언의 권리는 전혀 언급된바 없다. 미연방정부는 원주인 토지권을 주정부로부터 인수받아 이를 전공자들에게 분배해 준다. 그러면서 이 땅의 권리는 원주민에게서 미연방정부로 넘겨진다. 그것도 강탈에 의해서. 원주민들은 미국의 독립으로 말미암아 영국 프랑스 그리고 스페인의 지배로부터 미국의 지배로 다시 들어가게 된다. 이것은 그들 우리 동이족에게는 본격적인 비극의 막이 오르게 된 것이다. 영국과의 파리 조약에서 독립을 승인받은 미합중국은 해결할 과제가 산적한데 그중에는 애팔래치아 산맥에서 미시시피 강까지의 원주민 땅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이다. 결국 미국은 이 땅을 연방정부의 소유라는 배타적인 권리선언을 해버린다. 정부는 곧 타운쉽 조례(Township Ordinance)를 발표하는데 하나의 타운쉽을 36평방 마일로 하고 이것을 1평방 마일(640에이커)씩 36등분을 해서 에이커 당 최저 1달러에 불하한다는 것이다.
이 조례는 1800년에 개정되는데 에이커 당 2달러로 올리고 지불방법은 1/4은 현금이고 나머지 3/4은 4년에 분할납부하는 것이다. 그 후 1820년에는 80에이커를 단위로 에이커 당 1.5달러로 하고 1832년에는 40에이커로 축소한다는 안을 발표하는데 이는 농민들이 토지 소유하는 것을 쉽게 하려는 목적이기 때문이었다.(윤상환저 아메리카 인디안 투쟁사에서 인용) 그 다음 단계로 합중국 정부는 제퍼슨조례를 만들었는데 1787년 의회에서 통과된다. 그 내용은 영국에서 양도받은 땅에 세 개 내지는 다섯 개의 새 주를 만드는데 주 후보지 거주민 중에 백인 남자 5,000명이 있으면 되는 것이다. 자격을 인정받은 주 후보자는 연방의회에 대표로 갈 수 있었고 후보지의 인구가 6,000명이 되면 정식주로 승격을 받고 주민투표로 주지사와 상하원 의원을 선출하게 되는 것이다. 미 연방정부는 이렇게 원주민의 땅을 아무런 합의도 없이 자기들의 땅으로 소유권을 확정지은 것이다.원주민의 존재는 전혀 아랑곳도 하지 않고… 1781년 제정한 연방법(The Articles of Confederation)에 의해서 그들은 정부조직을 구성하고 주권국가로서 출발한다. 이제 그들은 그 자유를 원주민의 땅을 빼앗는데 이용한다. 땅의 임자가 되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던 그들이 아니던가? 조상 때부터 땅에 굶주린 그들은 토지의 취득이 미국 땅으로 오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
나는 일찍이 서울에서 어느 유명한 목사님의 이런 설교를 들었다. 스페인은 황금을 찾아 남미로 떠났지만 신앙도 잃고 신앙도 버렸다. 그런데 신앙을 찾아 북미로 떠난 영국인은 황금도 얻고 신앙도 지켜서 세계최대의 부국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은 무엇을 모르고 한말이거나 의도적인 거짓말이었다.
유럽의 사회조직은 모든 토지가 왕과 귀족과 교회에 귀속되어 있다. 그래서 비록 농민이라도 농지를 소유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그것이 가능했다. 오히려 미국정부는 그런 이민을 환영했다. 어차피 서부를 개척하고 개간하자면 막대한 인력이 필요했다. 미국의 상황과 유럽의 사정은 맞아 떨어졌다. 그리하여 유럽으로부터 막대한 인력이 미국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총칼을 앞세운 그들의 무자비한 야만적인 폭거 앞에 우리의 순진무구한 동이족 후예들은 그저 당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11월 26일자 뉴욕 타임지 1면에는 알래스카의 알루샨 열도(The Aleutian islands) 니콜스키(Nikolski) 마을에 학교가 문을 닫는다는 보도가 크게 되었다. 학생이 10명이 되어야 주정부의 지원을 받는데 학생이 9명뿐이어서 곧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그런 학교가 수십군데가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기자도 최소한 10,000년 전에 베링해협을 건너서 이주해 온 원주민들이 이제는 도시를 찾아서 시골마을을 떠난다고 했다. 그렇다. 최소한 만 년 전에 이 땅에 이주한 우리의 동이족을 서양 족들이 몰아낸 것이다. 단지 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는가? 성공한 강도질과 노략질은 처벌할 수 없는 것인가? 일단은 그렇게 보인다. 누가 미국을 처벌할 수 있겠는가?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미국의 신학과 교회는 양심이 없는가? 이것이 진정 기독교란 말인가?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미국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모여서 양심선언을 하고 선조들의 악행을 고백하고 용서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보상해야 한다. 이것이 미국이 가야할 방향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이다. 하나님의 정의의 심판이 임하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이 속죄의 작업을 해야 한다.
1767년 다니엘 분(Daniel Boone)이란 자가 과감하게 인디언들이 사는 서부에 정착하려고 개척을 위해 나섰다. 퀘이커교도의 집안 출신이 그가 켄터키에 관한 소문을 듣고는 여러 차례 들락거리다가 마침내 1775년 켄터키 강변에 분즈보로(Boone’s Borough)라는 정착촌을 개척했다. 이 마을이 바로 애팔래치아 서쪽에 세운 최초의 백인마을이다. 인디언들의 맹렬한 저항에 부딪혔
지만 이로 인해 백인들의 서부개척은 비로소 본 궤도에 오르게 된다. 서부의 광활한 땅은 인디언들의 땅인데 공짜로 누구든지 소유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마침내 동부의 가난뱅이들과 노동자들- 열심히 일해 보았자 끼니조차 때우기 힘들었던 이들-과 땅에 굶주린 백인들은 서부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나는 어릴 때 한국에서 서부영화를 보면서 웃통을 벗고 말 타고 달리며 활을 쏘아 백인들을 죽이는 인디언은 모두가 야만인이며 나쁜 사람들이고 역시 말 타고 달리며 총질로 인디언을 죽이는 백인 기마부대는 모두가 의롭고 착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 홍수같이 밀려오는 백인들을 누가 어떻게 막을 수 있으랴! 훈련된 군사도 없고 잘 정비된 정부조직도 없이 그저 평화롭게 살던 우리의 동이족들은 그냥 당할 수 없어서 투쟁의 대열에 나섰지만 그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이었다...
(NJ Fort Lee 한사랑교회 담임목사)
제13회 내이티브 아메리칸 파우와우 민속축제서 춤을 추는 인디언 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