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바로 지금 여기에

2010-01-0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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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숙(화가)

마침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소장전이 열리고 있어 그와 같은 시대에 작업한 데이빗 팍과 엘머 비숍의 ‘형상이 있는’ 멋진 그림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당시 뉴욕에서는 잭슨 폴락, 로스코 등의 인간이나 사물의 형상이 보이지 않는 추상표현주위가 풍미하던 때라 사람, 풍경을 그린 북 캘리포니아 베이지역의 형상파는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사조를 형성했다.한 장의 그림 속에 내재된 한 인간의 역사, 회화의 역사, 한 장의 그림이 창조되는 매 순간 화가의 손끝의 힘과 떨림, 그 영혼이 전해지는 필치의 정신성을 느끼며 그림의 아름다움 앞에 한참 서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에 소장된 오션팍 시리즈 #54<1972년 작>를 특히 좋아하는데 이 그림 앞에 설 때마다 가슴이 뛰고 설렌다.

캘리포니아에서만 느낄 수 있고 그릴 수 있는 빛과 색조, 선의 전개가 화가의 정신성의 극한점과 만나 무척 아름답다. 그 열린 세계, 그 아름다운 색조는 바로 지금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한 가운데에 숭고한 은총으로 우리와 함께 있다. 장엄하고 부드럽게 펼쳐지는, 사방이 툭 트인 풍경을 지나며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삶 중에 무엇을 깨닫고 이해하면 진정한 삶, 삶다운 삶을 사는 것일까를 생각했다. 늘 그렇게 생각이 깊은 나의 두뇌를 ‘내려놓고’ 지금, 여기에 시선과 가슴의 전 존재로 살아 있는 것, 내가 바라보는 대상이 바로 나와 일치한다는 점, 내가 생각하는 대상이 나와 일치한다는 점, 내가 너이고 네가 나이며 우리 모두가 하나라는 것을 매 순간 깨달으며 확확 비워 버리고 가득 채우며 또 비워 버리는 불이(不二)의 삶을 사는 것이 삶다운 삶의 실체를 살아 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하늘과 비와 바람과 구름이 전해준다.

대기, 허공, 공기를 바라보기를 즐겨하는데 저 투명하고 맑고 무한하고 열려있고 변화무쌍한, 비워 있으며 모든 것을 채우며 또 지나가 버리는, 무(無)이며 또한 모든 것인 허공을 바라보며 불이(不二)만 확연히 깨달아 살아가면 될 텐데… 그것이 무엇일까? 나와 너, 나와 일체의 경계가 없다는 뜻일 텐데, 바로, 지금, 여기에서 그 불이(不二)를 깨닫고 있으면… 새해에는 더욱 확연히 ‘그러하게’ 매순간을 살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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