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월에 부치고 싶은 부탁

2010-01-0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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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 (시인)

힘든 이민생활을 꾸리며 살면서도 우리는 곧잘 진실을 말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말하는 진실이 진실일까? 우리에게 진실은 무엇이며, 만약에 진실이 있다면 그 진실은 우리에게 어떤 얼굴로 머물고 있을까? 걸작은 잘 보여주지 않는다. 진실이란 신이 만든 작품 중에 최대의 걸작이지만 신은 그 진실을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나타내지 않고, 신은 그 진실이 무엇인지 아나 우리에게 그 진실을 눈에 보이도록 직접적으로 전시하지도 않는다. 또한 우리가 무엇을 하고 살며 우리가 어떻게 살든지 그 삶에 대하여 신은 우리를 재판하려 들지도 않고 배심원도 되지 않는다. 관심은 가득하나 무관심의 표현, 그것이 신의 진실이다.

우리가 한 사회에서 섞여 살다보면 이견도 있게 되고, 언쟁도 있게 되고, 때에 따라서는 다투기도 하지만 제 기분과 제 비위에 맞지 않는 것이 있다면 정당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씩’하고 한번 웃으면 다 되는 것을 뒷전에서 말을 만들고 뒷전에서 소문을 제작하는 사람을 보면 성격상 이상이 있는 사람이거나 생활에 여유가 없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일수록 육법전서에도 없는 진실을 아전인수 격으로 가지고 논다. 진실이 뭐며, 진실한 말과 진실한 행동이 ‘무엇이다’라고 그럴 듯하게 규정을 짓고 동분서주 한다.


현대는 물질문명 시대이고 물질의 풍요는 단순 시대를 탄생시킨다. 우선 가정경제가 어려우면 삶의 가치를 잃어버리기 쉽고 정신을 복잡하게 한다. 생활이 고달프면 노동의 가치와 삶의 가치를 생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리되지 않은 생각의 말과 행동을 무기로 삼고 동분서주 하면서 사람들을 고달프게 한다. 그런 사람은 자기가 지금 무엇을 하고 사는지 조차 알지 못한다. 노동에서 바라는 것은 노동의 가치로서 받는 대가요 인생에서 바라는 것은 인생에 드
리워지는 의미의 대가다. 그래서 나는 새해가 되는 이 정월에 그런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싶었다.

우선 생활 경제를 되도록 윤택하게 개선하고 단순해지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광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있듯이 우선 생활하는데 걱정이 적을수록 인간다운 사람의 마음이 생겨난다. 생활을 외면하고 살수는 없다. 생활의 내용과 가치를 모르거나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무엇을 하든지 간에 절반 이상은 허위고 무슨 말로 치장을 하든지 간에 그것은 자위일 뿐이다. 생활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육신의 힘이나 정신의 힘으로 재산을 늘리는 것이고, 그런 것이 여의치 않으면 정화하고 가다듬은 마음으로 자신의 욕망을 줄이며 거기에 비례해서 만족하는 것이다. 어느 나라이든 간에 그 나라의 화려한 문화와 문명은 그 나라의 황금시대에 나타났고 황금시대에 만들어 졌다. 가난에서 오는 고뇌를 껴안고도 좋은 작품을 쓰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산업시대가 낳은 황금기란 무엇을 하든지 간에 가난은 사람의 정신을 하락시키고 대신 짜증과 불만과 부정적 관념을 생산한다. 문학과 예술은 부가가치다. 유럽만은 못해도 미국은 사회보장제도가 잘 정비 된 나라여서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으로 사는 사람이 참 많은 나라다. 벌이가 시원치 않아도, 몸이 불편해도, 늙도록 나이가 들어도, 게으름을 피워 가나해도 먹고는 살 수 있는 나라다. 그러나 그것은 최저의 생활보장일 뿐, 마음에 여유를 가질 만큼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문학을 한다, 뭘 한다하면 그런 사람은 문학을 핑계로 시끄러운 바람만 일으키고 “그래”대신 “아냐!”를 부르짖는다. 자신있는 사람은 만사에 긍정 쪽이요, 자신 없는 사람은 작은 일에도 부정 쪽이다. 심각하게 생각을 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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