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새로운 시작의 밑거름

2009-12-2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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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며칠만 지나면 2009년이 끝나고 2010년이 시작된다. 세월이 화살같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다. 2009년의 새해가 된다고 기뻐 즐거워하던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다 지나가 버리고 새해가 코앞에 다가 왔으니 그렇다. 언제나 느껴지는 것은 가는 세월은 빠르고 오는 세월은 느린 것 같다.사실은, 가는 세월도 없고 오는 세월도 없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느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
해 본다. 우주의 시간과 인생의 시간을 비교해 보면 인생의 시간은 가는 것도 아니고 오는 것도 아닐 수 있기에 그렇다. 바람과 햇빛과 시원한 공기와 비와 눈을 품고 있는 이 땅, 지구의 나이만 해도 약 45억년이라 한다.

태양의 나이는 약 50억년. 지구와 태양이 태어나 지금까지 보낸 시간에 비하면 인류의 시간은 한 점에 불과할 수 있다. 인류가 생겨나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태어나 살다 갔고 또 지금도 태어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그 세월이 아무리 길다 하더라도 지구와 태양이 지닌 세월에 비하면 한 순간에 불과하다. 가는 시간도 오는 시간도 없는 듯 우주의 시간은 길고도 멀다. 그러나 사람은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구분해 놓고 살아가고 있다. 태양을 중심으로 태양력을 만들어 밤과 낮을 각각 열둘로 나누고 스물 네 등분하여 그것을 하루라 정했다. 하루는
지구가 한 바퀴 자전하는 시간이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하여 공전하는 시간은 삼백육십오일이라 하여 그것을 일 년이라 부른다. 2009년이 가고 2010년이 오는 것이라 함은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시점을 가리킨다. 그러니 지난 1년이란 세월은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크게 빙~돌았다는 것을 말한다.
누군가 이 세상은 돌고 도는 세상이라 했던가. 맞는 말인 것 같다. 우주도 돌고, 태양도 돌고, 지구도 돌고, 달도 돌고, 인생도 돌아가니 그럴 것이다. 인생이 돌아가는 것은 먼 조상으로부터 시작된 인생의 시작이 나에게 와서 멈추는 듯싶으나 아니기 때문이다. 후손을 낳아 그 후손이 다시 조상의 대를 이어가니 돌고 도는 것일 수밖에 없다.

우주처럼 끝도 밑도 없는 시간과 공간 속에 인생의 시간이란 잠깐 왔다가는 한 순간에 지나지 않으니 별 것 아닌 것 같고 허무하게만 느껴지나 그것은 아니다. 이유는 사람이 우주를 발견했으며 그 우주는 사람의 인식 안에서만 존재하기에 그렇다. 그러니 우주가 사람을 품고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우주를 품고 산다 해도 될 것이다. 한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은 한 별이 태어나는 것과도 같다. 그만큼 인간 한 생명의 탄생은 우주 한 점의 태어남과 같게도 볼 수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인류역사를 뒤바꿔 놓은 사실은 무수히 많기에 그렇다. 실제로 우주의 공간이 휘어있고 시간의 무한함을 알게 한 것도 사람이요
우주의 발견도 사람에 의해서 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 사람의 생명이 우주보다 더 귀하게 여겨지기에 인생의 한 순간순간은 최고의 가치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간과 공간 개념에서 보더라도 인생의 순간순간은 절대 가치를 갖고 있다. 한 순간이란 영원의 한 부분이지만 그 영원의 속성은 순간 안에 품겨져 있고 그 순간이 무한대로 뻗쳐져 있기에 그렇다. 역사의 장을 바꾸게 하는 번뜩이는 사람의 지혜는 지나오며 쌓아온 경험과 노력을 통해 역사 속의 한 순간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본다. 몸속을 타고 흐르는 피의 흐름소리를 사람의 귀는 듣지 못한다. 지구가 도는 커다란 소리도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피의 흐름소리와 지구가 도는 소리의 합창은 순간과 영원을 하나로 만든다.

달력만 새 것으로 바꾼다면 그것은 진정한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 아니다. 새 사람으로 바뀌는 것이 진정한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다. 지난 일 년 동안 가정과 이웃과 사회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는 삶을 살았다면 그것을 지켜나가는 것이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다. 2009년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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