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덧취 페이(Go Dutch)

2009-12-2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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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내 (컬럼비아 의대 임상조교수)

미국인들은 여럿이 식사를 할때면, 의례 다 하고 난 후, 비용을 덧취 페이(Go Dutch), 즉 서로 나누어 분담을 한다. 결코 한 사람이 사는 적이 없다. 식사비용은 분담한다고 해도 술값은 또한 별도로 술값은 식사비용에 포함돼 있지 않다. 술을 마신 사람이 술값을 따로 개인적으로 지불하는 것이다. 이게 미국식이다. 한인들도 미국인들하고 점심을 먹을 때는 덧취 페이를 한다. 술
을 마실 때는 미국식으로 또한 술값을 개인적으로 지불한다. 하지만 한인들끼리 모임에서는 식사를 할 때나 술을 마실 때는 남의 돈으로 먹고 마시려고 한다.

한인사회에서는 아직도 점심이나 저녁을 먹을 때는, 한 사람이 부담하는 경향이 있다. 한 두 명의 친구인 경우에는 한 사람이 부담을 해도 괜찮겠지만, 10여명의 사람이 같이 밥을 먹을 때는 한 사람이 모든 식비를 부담하는 것은 무리한 방식이다.나도 봉을 두세 번 당한 적이 있었다. 저녁때가 되어서 모두들 (10여명 정도) 식당으로 들어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한 명이 미리서 식당 주인한테, 나를 가르키면서, “저분이 오늘 식사비용을 낼 테니까, 우리들에게 저녁 주문을 받으세요” 하고는 저녁을 다 시켰다. 다 먹고 나서는 화장실에 좀 다녀오겠다고 하면서 나더러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 나에게 기다리라고 한 사람은 나타나지 않고, 내가 혼자 기다리고 있으니까 식당주인이 내게 와 모든 저녁식사비용을 다 나에게 지불하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지불하고 말았다.


친구한테 들은 이야기다. 3명의 선배들이 친구한테 가서 술 한잔 하자고 하면서 룸살롱(Room salon)으로 데리고 가더란다. 술 한 병을 시키니까, 남자 한 명당 접대부 여자들이 옆에 앉아서 술을 따라 주더란다. 그리고 춤도 한두 번 추고 말이다. 끝날 때가 되어 나오려고 하니까 술값이 2천 달러! 돈을 지불해야 할 때가 되니까, 한 선배는 술에 취해 의식을 잃은 척 바닥에 뒹구
러져 있고, 다른 선배는 토한 척 하면서 배가 아프다고 집으로 도망가 버렸다. 세 번째 선배 한 분은 화장실에 들어가서는 영영 나오지를 않더란다. 할 수 없이, 친구가 돈을 다 부담했다고 했다.

술을 공짜로 마신 사람에게 2천 달러는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 술값을 지불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2천 달러는 엄청나게 큰돈이다. 네 명이 먹었으면 네 명이 분담해서 500달러씩 지불하면 좋을 텐데, 한인들은 남의 돈으로 공짜로 술을 마시려고 하지, 결코 자기 돈으로 술을 마시려고 하지 않는다. 친구는 2천 달러를 혼자서 지불하고 난 후, 하도 억울해서 며칠간 잠을 자지 못했었다고 하소연했다. 얼굴가죽이 두껍고 염체가 없는 사람들은 항상 이익보기 마련이고, 수줍어하고 점잖은 사람들은 항상 손해 보기 마련이다. 미국까지 와서 남의 돈으로 술을 마시려는 나쁜 근성을 이제는 버려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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