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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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속에 피는 꽃

2009-12-2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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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구(맨하탄)

고은 시인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는 “6.25 동족상잔을 목격하면서 내 심성은 폐허가 되었노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의 시를 접해보니 그리움, 포근함 그리고 고운 내면이 느껴진다. 천상인 시인은 고문을 당한 후 실종되었다가 어느 정신요양원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웠을까. 억울하고 분해 그의 내면은 아마도 까맣게 변해버렸으리라. 그런데 그의 시에도 전혀 그의 고통이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삶의 여유와 정겨움이 베어 있다.
그렇다면 시인은 자신의 내면적 마음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일까? 승화라는 낱말 속에는 의도적이란 냄새가 풍겨지는데, 그의 고통을 아름답고 정답게 포장한 것일까? 의문이 생긴다.

사람은 어떤 외부적 힘으로 자신이 감당할 능력 밖의 고통이 짓눌리면 절망하게 되고, 그 절망의 끝자리에 폐허가 있다. 그렇게 되면 삶의 의욕도 욕망도 상실해 버린다. 그래서 사물의 인식을 존재의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눈이 열린다. 그러면 마음이 더 여유로워질 수 있고 따뜻하고 정겨워질 수 있다. 폐허 속에서 피어나는 소박한 꽃이다. 그렇다면 두 시인의 시에서 풍겨지는 나의 느낌은 필연적 결과로 보인다. 언젠가는 나도 고운 심성이 내 내면에 채워지면 고운 글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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