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이너스’ 인생

2009-12-2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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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길(수필가)

직장을 잃고 집에서는 나왔으나 갈 데가 없어서 찬 바람부는 거리를 방황하는 이들이 있다. 수년간 애써 가꾸어온 가게를 정리하고 신문광고를 뒤적이며 렌트비를 걱정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은행의 잔고는 바닥이 나고 카드빚은 늘어 무섭게, 정말 짜증나게 꼬박꼬박 이자는 올려 붙어 독촉 전화 걸려오는 것이 무서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은 잘 나가는데 자기만 낙오된 듯한 무거운 절망감이 짓누르면 가족들 보기가 민망해 지기도 할 것이다.

뒷 뜰에 심어 놓은 ‘히아신스’에서 많은 교훈을 배운다. 일년 내내 땅속에서 생명의 꿈을 알뿌리에 담고 참고 기다리다가 추운 겨울이 지나고 추위가 사그라지지 않고 잔설이 남아있는 이른 봄 눈 속에서 굵은 꽃대를 힘차게 올리며 고개를 든다. 겨울의 추위가 더 심할수록 꽃의 향기는 더욱 짙게 퍼진다. 추위와 같은 어려움에 굴하지 않는 강한 생명력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한 생을 살다보면 실패와 좌절도 있기 마련이다. 그 실패를 절망으로 받아들이면 ‘마이너스’ 인생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참고 기다리며 새로운 기회를 위한 준비에 게으르지 않으면 반드시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될 것이다.


인생의 막다른 길에서 새로운 길과 희망을 찾는 경우가 있다. 자기가 자랑하고 싶은 학벌을 빨리 버리고 자기가 잘 나가던 시절의 사장이라는 허울을 빨리 던져버릴수록 새로운 기회도 빨리 올지 모른다. 눈을 내려 아래를 보면 새로운 길이 보일 것이다. 절망의 시기는 새로운 희망의 준비 기간이 될 수도 있다. 자격증 취득을 위한 공부를 한다든가, 외국어를 더 익힌다든가,
로운 기술을 배우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여유롭고 잘 나가던 시기에 미래에 대한 준비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주자(朱子)는 그의 십계훈(十戒訓)에서 ‘부불덕용 빈후회(富不德用貧後悔)’라 했다. 넉넉할 때 아껴 쓰고 선하게 쓰지 않으면 나중에 가난해져 후회하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우리 한인들은 조금 여유가 생기면 고급차로 바꾸고 골프치며 명품을 즐긴다는 말이 있다. 중국인들은 집을 가지고 사는 ‘오너‘라도 허름한 옷을 입고 시장에서 싸구려를 뒤적인다고 한
다. 그들은 아끼고 모아서 부동산 투자부터 우선으로 삼는다. 한인과 중국인의 그 다른 점이 플러싱의 노른자 상권을 중국인에 내주고 밀리는 원인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작은 부자가 되고 싶거든 저축을 먼저 해라. 쓰는 것은 부자가 된 뒤에 해도 된다는 어떤 거부의 경험담은 마음에 담을 만하다. 은행의 잔고가 마이너스 되고 경제적인 생활이 궁핍해지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실패와 절망에 좌절하여 아무런 시도도 해 보지 않고 한 생을 허송해 버리는 이가 진정으로 마이너스 인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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